[한명숙여성총리지명] 쉽게 감동 … 별명 '감격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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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한명숙(열린우리당) 의원을 남편 박성준(성공회대 겸임교수)씨는 이렇게 평했다. 박씨의 말대로 한 후보자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강점이다. "좀처럼 큰소리나 화를 내는 일을 본 적이 없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감격시대'로 불린다. 작은 일에도 잘 감동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온화하고 푸근한 이미지는 한 후보자만 갖고 있는 정치적 자산이자 동력이다. 여성이 발 붙이기 힘든 정치풍토에서 그를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한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온화한 이미지 뒤엔 '매서운 강단'이 있다. 조용한 것 같으면서 뚝심이 있고, 부드러우면서도 열정이 넘쳐나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전형이다. 이런 성격은 재야.여성 운동권 출신의 파란 많은 인생 역정과 무관치 않다. 한 후보자는 대학(이화여대 불문과) 시절부터 2000년 정치권에 들어올 때까지 40여 년을 민주화.여성운동에 쏟았다. 대학 졸업 후인 1979년엔 시국사건인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에 연루돼 1년6개월간 옥살이도 했다.

운동권 시절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운동에 몰두했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 지하철 역에서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울 정도로 열정을 쏟았다.

한 후보자는 여성운동계에선 대모로 불린다. 민주화의 욕구가 분출하던 80~90년대 기존 제도권 여성운동의 대안으로 등장한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을 중심으로 가족법 개정, 남녀 고용평등법.성폭력 처벌법 제정 등 여성권익 보호를 위한 활동에 앞장섰다. 열린우리당 이미경 의원과 함께 여연의 공동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한 후보자는 자신의 인생 항로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두 '사건'으로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과 남편 박 교수와의 만남을 꼽는다.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은 강원용(평화포럼 이사장) 목사가 주도했다. 강 목사는 사회 변혁을 꿈꾸며 노동자.농민.여성.학생.종교집단에 대한 교육을 목적으로 크리스챤 아카데미를 만들었고 한 후보자와 만났다. 저항과 투옥으로 이어지던 젊은 시절, 강 목사는 그를 친동생처럼 돌봐주며 이끌었다. 당시 활동을 같이했던 장필화 이화여대 교수, 김희선(열린우리당) 의원, 이계경(한나라당) 의원, 서명선 여성개발원장, 이혜경 여성문화예술기획대표 등과는 지금도 끈끈한 사이다.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은 '감방 동기'다.

그의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은 남편 박 교수와의 만남이다. 두 사람은 대학시절 기독교계열 운동권 서클에서 만났다.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 학생이던 박 교수는 이론이 뛰어난 운동권 학생이었다. 연애한 지 4년 만에 두 사람은 결혼한다. 그러나 신혼 6개월 만에 박씨가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시련이 시작됐다. 한 후보자는 13년 동안 남편의 옥바라지를 했다. 박 교수는 "1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쓰고 책을 넣어줬다. 그때 주고받은 편지가 라면상자로 2박스"라며 "그때 집사람이 보내준 책으로 감방에서 신학을 독학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와는 여성운동을 하면서 알게 돼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이 여사를 통해 DJ와도 인연을 맺었다. 그를 여성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이끈 것도 DJ다. 16대 총선을 앞두고 2000년 창당한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했고 이듬해인 2001년 여성부가 생기면서 초대 여성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인 2003년 초대 환경부 장관에 임명됐다.

한 후보자는 보수적인 독일에서 첫 여성 총리시대를 연 앙겔라 메르켈(52) 총리와 닮은 점이 있다. 메르켈 총리도 여성청소년부(91년).환경부(94년) 장관을 지냈다.

한 후보자는 재야 활동을 같이했던 이경숙(열린우리당) 의원, 여성부 장관을 지낸 지은희 덕성여대 총장, 김세균 서울대 교수, 황한식 부산대 교수, 정창렬 한양대 명예교수, 여성학자 오숙희씨 등과도 가까운 사이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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