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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사로 분류 … 책값으로 수백만원 오가도 처벌 조항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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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치인들이 출판기념회를 열 때마다 ‘책 판매를 빙자해 정치자금을 모은다’는 비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지만 이를 규제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출판기념회는 경조사로 분류돼 정치자금법에 따른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모금 한도 없고 내역 공개 안 해도 돼 #청탁·선거홍보 아니면 제재 안 받아 #19대 국회 규제안 나왔지만 수포로

정치자금법에 따라 국회의원이나 출마를 희망하는 예비후보는 후원금 모금 내역을 공개해야 하고 법인·단체로부터 후원금을 받는 것도 금지된다. 하지만 출판기념회의 경우 모금 한도에 대한 규정이 없고 모금 내역을 공개할 의무도 없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거나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지난해 청탁금지법이 시행되면서 출마를 앞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현역 의원 등 공직자는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으로 후원 액수가 제한되고 있지만 정당한 ‘책값’으로 지급됐다면 여기에서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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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 도서가격보다 높은 액수를 건넸어도 이를 불법으로 간주해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 선관위에 따르면 도서를 무료로 배포하거나 ‘헐값’으로 도서를 판매하면 선거 홍보로 간주해 제재할 수 있지만, 반대로 도서를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에 대한 규정은 특별히 마련돼 있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의원 보좌관은 “출판기념회에서는 주는 대로 ‘책값’이 된다.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뭉칫돈이 오가는 경우를 종종 본다”고 말했다.

책값과 함께 뒤에서 청탁이 오갔거나 대가성이 뚜렷하다면 정치자금법 위반이나 뇌물죄가 적용될 수 있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은 2013년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한국유치원총연합회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아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검찰은 그가 유아교육법 개정안 등 특혜성 법안을 발의해주는 대가로 한유총에서 조직적으로 돈을 건넸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신 의원은 재판 과정에서 “회원 개인들이 순수한 찬조 목적으로 준 돈이며 출판기념회 축하금을 로비자금으로 처벌한 유례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7월 대법원은 그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출판기념회 후원금을 뇌물죄로 인정한 첫 사례였다.

출판기념회를 선거 홍보용으로 이용하면 공직선거법에 위반된다. 정상혁 충북 보은군수는 2014년 주민 4900여 명에게 자신의 출판기념회 초청장을 보내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90만원의 벌금형이 확정됐다. 2014년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과 동영상을 통해 자신의 치적을 홍보한 최명현 전 제천시장에게도 이듬해 3심에서 벌금 250만원이 확정됐다. 선관위는 출판기념회 도서에 특정 지역 개발 등 선거공약을 싣거나 특정 후보자를 비방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신학용 의원 사건을 기점으로 지난 19대 국회에서 “출판기념회를 법적으로 규제하자”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도서를 정가로 판매하는 방안 ▶수입과 지출을 선관위에 신고하는 방안 ▶출판기념회 자체를 폐지하는 방안 등이 나왔지만 이내 자취를 감췄다. 현재까지도 출판기념회 관련 법 규정은 ‘선거 90일 전 금지’가 유일하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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