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퍼 “북핵 시간벌기용 대화 안 할 것 … 비핵화 목표 밝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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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대리(왼쪽)가 28일 서울 정동 주한 미국대사관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위한 시간 벌기용 대화는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뉴시스]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대리(왼쪽)가 28일 서울 정동 주한 미국대사관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위한 시간 벌기용 대화는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뉴시스]

평창 겨울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미국이 북한 문제에 대해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북한을 향하지만 한국도 염두에 둔 메시지다.

“미국, 과거 실수 반복하지 않을 것 #한·미 연합훈련 추가 연기 없다 #남북관계 진전, 핵 해결 전제 돼야” #문정인 특보 워싱턴 발언 논란 #“대통령이 주한미군 가라하면 가야”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대리는 28일 서울 정동 대사관저에서 열린 외교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북·미 대화와 관련, “목표가 비핵화라고 명확히 표명되지(stated) 않은 대화는 원치 않는다. 북한은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급한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적절한 조건’은 북한이 핵 폐기를 수용하는 것임을 재확인했다. 그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위한 시간 벌기용 대화는 하지 않는다”며 “과거 북한은 미국·한국 등과의 대화를 시간 벌기에 썼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길 원치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의 발언은 북한이 핵 폐기를 위한 중간 과정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지 않는다면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유예나 동결 선언만으로는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은 대화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한 것과는 온도 차가 있는 셈이다. 이날 간담회는 내퍼 대사대리가 자청했다. 평창올림픽이 끝나기 전부터 계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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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퍼 대사대리가 이날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연기에 대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일축한 것도 연합훈련을 놓고 한·미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관측을 낳는다. 한국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를 이어 가기 위해 한 차례 연기한 연합훈련을 재조정하자고 요구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미 의회 전문지인 더 힐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지난주 미 상·하원 군사위원회 대표단이 방한했을 때 한·미 훈련 추가 연기 문제가 거론됐다”고 보도했다. 더 힐에 따르면 대표단을 이끈 제임스 인호프 상원의원의 선임보좌관은 기자들과 만나 “추가 연기에 대한 대화가 있었는데 우리는 합법적이고 정기적인 훈련을 계속 진행해야 하고, 적절한 시점에 일본도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밝혔다”고 말했다. “계속 진행해야 한다”는 미국 대표단의 반응으로 보면 한국 측이 추가 연기를 요구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미측에 재연기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연합훈련 연기나 취소는 극단적인 주장이고 희망이 있다면 4월 1일 훈련 시작 전에 북·미 간 일종의 타협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피력했다. 또 “아직 한 달이 남아 있어 (상황이) 바뀔 수 있고 북·미 모두 타협을 만들어 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와 관련해선 “대한민국 대통령은 군사주권을 갖고 있다. 대통령이 주한 미군더러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한다”고도 했다.

내퍼 대사대리는 최근의 남북 관계 개선이 한·미 동맹의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고만 답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남북 관계 진전을 환영한다. 다만 이것이 단순히 남북 관계 개선뿐 아니라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에 북한이 응답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환영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그는 간담회 도중 “북한은 우리에게 어떻게 연락을 취할지 알고 있다”고 반복적으로 말했다. “‘대화에 대한 대화’를 하기 위한 접촉이 진행된 적이 있었고, 뉴욕채널이 그런 역할을 담당했다”고도 소개했다. 한국 정부는 ‘북·미 대화를 중매한다’는 입장이지만 북한이 진정성이 있다면 미국에 직접 전달하면 된다는 뜻이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지금 북한이 한국을 중간에 끼고 이런저런 신호를 보내면서 교묘히 미국의 반응을 떠보는 게임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며 “바로 미국에 얘기해도 될 것을 북한이 굳이 한국을 한 번 거쳐서 해 한·미 간 이견의 소지만 키우고 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유지혜 기자, 외교부 공동취재단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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