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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수원교구는 성폭력 신부의 방패막이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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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선교지에서 여성 신자에게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행사한 한만삼 신부에 대해 천주교가 사실상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가해자의 사제직 박탈 등 제 살을 도려내는 사죄의 진정성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피해 여성 개인의 용서만 구하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아프리카 수단에서 한만삼 신부가 현지인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아프리카 수단에서 한만삼 신부가 현지인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25일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의 명의로 내놓은 사과 서한부터가 그랬다. 특별서한에서 이 주교는 "교구 사제의 성추문으로 인한 언론보도를 접하고 수원교구와 한국천주교회 그리고 많은 국민이 큰 충격에 휩싸였다"며 "피해 자매님과 가족들 그리고 교구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했다. 하지만 징계조치 등 한 신부의 신병 처리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여성의 인권과 품위 존중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이 프로그램에 사제의 참여를 의무화하겠다고 했다. 말로만 하는 사과라는 인상이 강했다. 피해 여성이 요구한 교구 내 성폭력 피해 전수 조사는 묻혔다.

 수원교구는 심지어 한 신부의 행방을 알면서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의심을 살만한 처신을 했다. 한 신부는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지방으로 잠적했다. 교구장 주교와 직접 면담을 통해 성폭력을 저지른 사실을 인정한 뒤다. 그런데 수원교구는 “한 신부는 지방으로 내려가 회개를 하고 있다. 어디인지는 모른다”고만 하고 있다. 한 신부가 있는 곳은 수도원일 수도, 피정의집일 수도, 아니면 오지의 은신처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상명하복의 전통이 엄격한 천주교 생리상 교구와의 교감이나 지시 없이 '개인 행동'을 했으리라고 보기 어렵다. 한 신부는 사건 폭로 후 닷새째 잠적 중이다. 공개적인 사과나 입장 표명은 없었다.

 한 신부가 주임신부로 있던 광교1성당은 25일 주일 미사를 취소했다. 이 성당의 평신도회는 24일 신도들에게 '내일(25일) 일요 미사는 없다. 3일 정도 보도거리가 없으면 이슈가 잠잠해질 것’이라는 내용의 단체 메시지를 보냈다. 수원교구가 이번 사건을 ‘지나가는 소나기’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이유다.

 한 신부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핵심멤버였다. 운영위원으로 일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이 어떤 단체인가. 1970~80년대 서슬 퍼런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던 민주화의 보루 같은 존재 아니었나. 그랬던 사제단조차 이번 한 신부 파문의 처리에 있어서는 온건한 모양새다. “한 신부는 엄연히 사제단의 일원이며 형제이기에 그의 죄는 고스란히 우리의 죄임을 고백합니다”라고 밝혔지만 오히려 "사제단의 일원이며 형제"라는 점을 강조했다는 인상이 남는다. 납득할 만한 한 신부 처리 방안이 빠져 있어서다.

 각종 사회 이슈에 대해 날카로운 화살을 가차 없이 쏘아대던 사제단이 정작 내부 구성원의 끔찍한 범죄에 대해서는 무디기 짝이 없는, 촉이 없는 화살로 변죽만 올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한 신부는 정의구현사제단을 찾아가 “7년에 걸쳐 피해 여성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러나 용서를 받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말도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 여성은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7년 동안 두려워서 한 신부를 피해다녔다고 한다. 일부러 핸드폰 번호까지 바꾸었다. 귀국 후에는 한 신부를 만난 적도 없다. 그런데도 "7년간 용서를 구했다"는 한 신부의 거짓말 때문에 지금도 심적 피해를 입고 있다.

피해 여성은 성폭력이 이뤄지는 순간에도 천주교 해외 선교의 공든 탑이 무너질까 봐 제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고 한다. 사제단은 이런 사정을 정말 모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우리도 죄인"이라는 말만 되뇌고 있는 걸까.

성폭력 피해고발 캠페인 '미투 운동'에서 한 여성이 꽃을 든 채 성폭력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성폭력 피해고발 캠페인 '미투 운동'에서 한 여성이 꽃을 든 채 성폭력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가톨릭 교회법(제1395조 2항)은 ‘힘으로나 협박으로나, 공개적으로나, 또는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범하였다면, 정당한 형벌로 처벌되어야 하며, 성직자 신분에서 제명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 신부의 피해 여성은 아프리카 남수단에 선교 봉사차 머무는 11개월 동안 “손가락으로 셀 수도 없을 정도”(피해자 증언)로 상습적인 성폭력을 당했다고 고발했다. 교회법이 경우에 따라 사회법보다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이유는 성직자는,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보통 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시대의 양심이자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 신부의 성폭력 사건은 이미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 사건이다. 한 신부는 지금 숨어서 회개할 때가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가까운 경찰서를 찾아 있었던 일을 낱낱이 털어놓고 죄가 있다면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것이 7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한 바윗덩어리 같은 상처를 안고 사는 피해 여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진정한 회개의 첫걸음이다. 그는 사제복도 벗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자신이 몸담고 있는 종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한만삼 신부가 주임신부로 재직했더 수원교구의 광교1성당. 지난 주일에는 미사가 열리지 않았다. [중앙포토]

한만삼 신부가 주임신부로 재직했더 수원교구의 광교1성당. 지난 주일에는 미사가 열리지 않았다. [중앙포토]

성폭력 고발 캠페인 '미투 운동'을 통해 성폭력 반대와 도덕성 요구에 대한 사회적 상식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중앙포토]

성폭력 고발 캠페인 '미투 운동'을 통해 성폭력 반대와 도덕성 요구에 대한 사회적 상식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중앙포토]

만약 한 신부가 그 길을 거부한다면 교구가 나서야 한다. 지금은 성폭력과 도덕성의 충격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지는 시기다. 천주교는 이 거대한 시대적 요청과 함께할지, 아니면 역행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천주교 수원교구는 성폭력 신부를 감싸는 방패막이인지, 아닌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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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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