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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업체 키우던 '가채점', 올해 6월 모의평가부터 수능 출제 기관이 나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올해 6월 모의평가에서 응시자의 가채점 예상 등급 구분 점수(등급 컷)를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모의평가에서 큰 오류가 발견되지 않으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도 평가원이 가채점과 등급 컷 발표를 맡겠다는 계획이다.

용어사전가채점

 수능 성적이 나오기 전 수험생이 자신이 쓴 답을 맞춰보고 수능 등급 등을 예측하는 것

 성기선 평가원장은 26일 세종에서 이뤄진 기자 간담회에서 “지난 11월 평가원장으로 부임하고 나서 가장 자주 들은 얘기가 ‘등급 컷 발표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며 “내부 시스템을 최신 장비로 개선하면 시험 4~5일 후 가채점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6월 모의평가에서 가채점 해보고 수능 도입 여부를 정하겠다. 가채점 결과를 (평가원이) 내놓으면 수험생들이 수시 최저학력 기준을 확인해 대학별 고사를 준비하는 데 훨씬 더 도움 될 것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용어사전등급

 영역·과목별로 점수에 따라 전체 수험생을 9등급으로 나눠 해당 수험생이 속한 등급을 표시한다. 전체 수험생의 상위 4%까지 1등급, 그 다음 7%까지 2등급에 속한다. 절대평가가 적용되는 영어와 한국사는 비율이 아니라 일정 점수를 기준으로 등급을 나눈다. 가령 영어는 90점 이상이면 1등급에 해당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올해 6월 모의평가에서 가채점을 직접해 등급 컷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2018 대학수학능력시험 다음 날인 서울 서초구 서초고등학교에서 한 수험생이 수능 결과를 가채점해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올해 6월 모의평가에서 가채점을 직접해 등급 컷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2018 대학수학능력시험 다음 날인 서울 서초구 서초고등학교에서 한 수험생이 수능 결과를 가채점해보고 있다. [연합뉴스]

성 원장은 지난해 치러진 2018학년도 수능 채점 결과를 발표할 때도 “올해 수능부터 예상 채점 결과를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 6월 모의평가부터 테스트해볼 생각”이라고 말하는 등 등급 컷 공개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었다.

성기선 평가원장 기자 간담회서 밝혀 #모평 시범 운영 후 수능 도입여부 검토 #정부는 사교육 업체 등급 컷 발표 ‘방치’ #일부 수험생 표집조사 한 결과라 불확실 #학생, 학부모 “신뢰할 정보 없으니 참고” #전수 채점 등급 컷 공개 대부분 환영

‘가채점’은 수능 성적이 나오기 전 수험생이 자신의 수능 등급 등을 예측하는 것을 말한다. 매해 수능이 끝나면 사교육 업체들은 당일 저녁부터 앞 다퉈 등급 컷을 발표한다. 등급 컷은 등급을 구분해 주는 점수를 말한다. 국어 1등급 구분점수가 90점(원점수 기준)이라면 90점 이상은 1등급, 89점은 2등급을 받는다. 실제 등급 컷은 평가원이 성적을 발표할 때까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수험생들은 가채점 결과와 업체들의 등급 컷을 바탕으로 입시 전략을 짠다.

용어사전원점수

맞힌 문제의 문항당 배점을 그대로 더한 점수. 국·영·수는 100점, 탐구영역은 50점 만점. 원점수는 영역·과목 간 난이도 차이 때문에 직접 비교가 불가능해 수능 성적표엔 표기되지 않는다.

성기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뉴스1]

성기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뉴스1]

문제는 사교육에서 제공하는 등급 컷이 업체별로 제각각이고, 실제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업체들이 내놓는 자료는 수험생들이 업체 홈페이지에 올린 수십만 건의 가채점 점수로 통계를 낸 것에 불과하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1등급 컷이 91점이라고 하는 A업체와 93점이라고 하는 B업체 중에 어느 곳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녀가 92점을 받았다면 A업체 기준으론 1등급이지만, B등급 기준으론 2등급이 된다. 둘 중 한 곳이 실제 등급 컷과 일치한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신뢰할 만한 정보가 없으니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사교육업체가 내놓는 등급 컷을 믿고 도박을 하는 것이다.

재수생 자녀를 둔 박모(46·돈암동)씨는 “정부는 사교육 없앤다고 온갖 정책은 다 내놓으면서 정작 수험생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은 사교육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유치원 추첨부터 대입까지 모든 제도가 ‘로또’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수능 가채점에 아예 나서지 않은 것은 아니다. 평가원은 2002년, 2003년에도 서울과 경기 지역 3개 시험지구 수험생 4만여 명의 수능 답안지를 표본 채점해 추정치를 내놨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실제와 차이가 나 문제가 됐고, 이후론 예상 채점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사교육 업체의 등급 컷 발표를 묵인하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와도 “정부가 어떻게 예상점수를 발표하느냐” “오류가 났을 때 수험생들의 혼란을 어떻게 책임지느냐” 등의 핑계를 대며 외면해왔다.

2018년 대입 수능 성적표가 배부된 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성적과 정시배치 참고표를 보며 지원 가능한 학교와 학과 등을 살펴보고 있다. 조문규 기자

2018년 대입 수능 성적표가 배부된 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성적과 정시배치 참고표를 보며 지원 가능한 학교와 학과 등을 살펴보고 있다. 조문규 기자

평가원의 가채점 실시 여부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안광복 서울 중동고 입학팀장(철학교사)은 “사실 매년 수험생들은 자신의 수능 등급을 제대로 모른 채 대학별 고사를 치러야 하기 논술 등의 전형도 ‘깜깜이’나 마찬가지다. 평가원이 직접 모든 수험생의 답안지를 가채점해 등급 컷을 발표하면 학생들의 혼란도 적고 입시전략을 짜기도 수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대입은 학생들의 12년의 노력이 결실을 보는 과정인데, 단지 사교육 업체의 예측만으로 큰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가원이 전수 채점을 하면 정답이 실제와 다를 가능성도 적고, ‘1차 채점’이라는 점을 충분히 알리면 오류가 발생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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