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소득없이 이미지만 손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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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대 제3세계 외교정책 변화의 커다란 분기점을 이루는 것으로 여러 관측통들에 의해 분석되고 있다.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개입은『사회주의 공동체의 이익옹호를 위해서는 군사개입도 할 수 있다』는「브레즈네프」독트린의 마지막 적용이었다고 할 수 있다.
「브레즈네프」는 68년 체코가 자유화를 요구했던「프라하의 봄」에 바르샤바 조약군을 투입하여 이른바「제한 주권론」을 표방했고 서방세계는 물론 같은 사회주의국가들에서도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소련의「국제적 사회주의론」을「사회제국주의」와「패권주의」로 비난했던 중공과는 결정적으로 사이가 벌어지게 돼 소련의 대 제3세계에 대한 도덕적 영향력은 반감되었다고 할 수 있다.
「브레즈네프」의 군사개입 외교는 이밖에 소련의 경제적 부담만 가중시켰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의 반발과 제3세계 국가들의 의혹을 불렀을 뿐 아프가니스탄을 평정하지도 못하고 소련의 이미지만 손상시켰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 전비를 쏟아 넣으며 매년 베트남에 18억 달러, 쿠바에 60억 달러, 니카라과에 6억 달러의 군사 경제적 원조를 그동안 해왔으나 경제적 부담만 가중돼 최근 그 규모를 축소해오고 있다.
소련의 이같은 정책적 변화는 결국 경제적 실용성과 철학적 재검토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정권 출범이래 첫째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경제 부흥을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가용 자원의 국내 투여를 해야겠다는 필요와 제3세계의 공산화가 2차 대전 직후 동구 국가를 위성국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쉽사리 이루어진 것과 같은 국제적 여건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선호하지만 우리의 신념을 그 어느 누구에게도 강제하지 않겠다.
그들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게 할 것이며 역사는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바로 잡을 것』이라는「고르바초프」의 말을 옛날처럼 단순한 프로파간다로만 볼 수 없는 실질적인 변화가 소련의 행동에서 엿보이고 있다.
신 베오그라드 선언으로 불리는 소련의 이같은 입장은「고르바초프」의 신 사고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네바에서 아프간 평화협정이 조인된 후 PLO와 이스라엘·이란·이라크 전쟁에 대해 그동안 미국이 취해왔던 정치적 해결을 도모하기 시작했던 것도 바로 신 사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소련의 변화는 아프간 사태의 해결방식을 캄푸치아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데서 상호성만 보장된다면 니카라과에서도 손을 떼겠다는 입장에서도 보여진다.
소련은 결국 군사적 개입을 줄여 남게되는 자원으로 국내발전을 도모하는 한편 그같은 발전을 통해 제3세계에 대해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겠다는 발상이다. 뿐만 아니라 중공과의 관계개선을 도모,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위상을 재정립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비록 단기적으로는 체면 손실임에 틀림없지만 장기적으로 보아 소련의 목표를 재 설정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철군은 강행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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