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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카페 창업 '비하인드' 스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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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남자가 있었다.

모두 직업이 달랐다. 건축가인 임태병(36)씨와 학원강사 김의식(36)씨,

음반회사에서 일하는 김영혁(32)씨, 그리고 무역회사에 다니는 장민호(30)씨.

충청.전라.경상도와 서울로 출신지도 제각각이었다.

▶ 현실은 맞추고 꿈은 좇고…. 두 마리 토끼 몰이가 행복한 투잡스족 임태병.김영혁.김의식씨(왼쪽부터). 장민호씨는 직장에서 해외근무 발령을 받아 잠시 떨어져 있다.

고교 동창과 대학 동아리 등을 통해 서로 알게 된 이들 네 남자에겐 그러나 하나의 꿈이 있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2002년 1월, 드디어 네 남자가 의기투합했다.

누군가 농담조로 던진 말 "우리, 카페나 할까"에 나머지 세 명이 기다렸다는 듯

"왜 아니야"로 화답한 것이다.

본업에 지장이 없고 취미를 즐기면서 부수입도 버는 데 카페만한 것이 없었다.

*** 컨셉트 설정

네 남자는 머리를 맞댔다. 어떤 카페를 할 것인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범위를 좁혀 핵심 고객층을 설정해야 한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직장여성을 주고객층으로 잡았다. 그들이 날로 확대되고 있는 국내 포도주 시장을 주도할 소비 집단이라는 판단이 섰다. 공략 대상이 정해지자 메뉴 선정은 어렵지 않았다. 포도주와 샌드위치가 주력이 됐다. 벤치마킹을 위해 기존의 카페와 바 등을 수없이 뒤지고 다녔다. 민호씨와 의식씨는 휴가를 내 홍콩의 카페와 바를 둘러보기도 했고 태병씨는 수시로 일본을 드나들며 눈동냥을 했다.

"가능한 한 많이 다니고 많이 먹어본 것이 메뉴 선정이나 가격대 결정에 큰 도움이 됐다"고 영혁씨는 설명한다. 샌드위치는 가능한 한 좋은 재료를 사용했다. 가격이 7000원대로 높아졌지만 싸구려라는 이미지는 싫었다. 포도주는 전문 와인바가 아닌 만큼 중저가대로 정했다. 재고관리를 위해 종류도 30종 이하로 제한했다.

*** 시장 조사

"목만 좋으면 카페는 만사 오케이"라 할 만큼 가게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네 남자는 줄기차게 발품을 팔았다. 역삼동.강남역.서초동.삼청동.광화문.인사동 등의 카페 밀집 지역을 세밀하게 살폈다. 후배들에게 일당을 주며 각 지역의 유동인구 수를 시간대.연령대.성별로 조사, 분석했다. 주변 회사 정보와 지역 거주자 정도 등 주변환경도 조사했다. 수개월을 돌아다니자 몇 가지 원칙이 정해졌다. 번잡한 대로변보다 아늑한 안쪽길이 더 분위기가 있다. 카페 운영 노하우가 없는 상황에서 임대료 부담은 있더라도 접근성이 용이한 1층을 선택한다. 너무 넓지도 너무 좁지도 않은 20평 규모가 적정수준이다 등등.

하지만 좋은 공간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맘에 들라 치면 권리금이나 임대료가 턱없이 비쌌고 가격이 맞으면 접근성이 떨어지는 변두리 지역이 대부분이었다.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갖가지 이유로 원점으로 돌아온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1년여 세월이 흘렀다.

*** 카페 출범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태병씨 처형이 운영하던 홍대 앞 카페가 매물로 나온 것이다. 네 남자가 자주 만나 회의를 하던 곳이었다. 아르바이트생 2명을 고용해 홍대 앞 상권에 대한 철저한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현상유지 정도 하는 카페였지만 상황을 호전시킬 자신이 생겼다. 인수를 결정했다. 미리 생각해둔 상호가 있었지만 '비하인드(B-hind)'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키로 했다.

카페를 재개장하는 데 각자의 본업이 다른 게 도움이 됐다. 실내 디자인과 메뉴 개발은 건축가인 태병씨가 맡았다. 포도주 선정은 와인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의식씨가 담당했다. 음악은 음반회사에서 근무하는 영혁씨 몫이었다. 라디오보다 더 빨리 신곡을 소개해 주가를 날린 적도 종종 있었다. 민호씨는 대기업 재무팀 직원답게 카페 경영 관리를 꼼꼼히 챙겼다. 총비용 2억원. 각자 5000만원씩 투자했다. 친구들끼리지만 사업계획서와 투자동의서 등 각종 서류를 만들어 사인했다. 돈 때문에 친구를 잃기는 싫었다. 2003년 5월 홍대 앞에 카페 '비하인드'가 새 단장으로 문을 열었다.

*** 2호점 개업

카페 '비하인드'는 이제 매니저 2명 외에 12명의 아르바이트생을 둘 만큼 성장했다. 하루 150여 명이 드나드는데 그 중 절반은 골수 단골들이다. 네 명의 사장은 매일 저녁 교대로 나와 일을 거든다. 사장이 여럿이다 보니 큰 돈벌이가 되지는 않는다. "아직 본업에서 받는 월급만 못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다음달께면 투자 원금을 뽑을 전망이다. 2002년 7월에는 대학로에 2호점 카페 '더 테이블'을 냈다. '비하인드'를 운영하며 쌓인 자신감이 계획을 1년이나 앞당길 수 있었다. 앞으로 두 개 정도 더 연다는 게 이들의 목표다. 하지만 카페로 '팔자'를 고칠 생각은 누구에게도 없다.

"돈을 벌려고 했으면 술집이나 음식점을 했겠죠."

입이라도 맞춘 듯 같은 대답이었다. 자신들의 꿈이었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을 갖게 된 데 만족해 하는 듯했다. 다른 좋은 점도 있었다.

"경영인과 고용주 입장이 돼 보니 다니는 회사 사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욕심이 없어선지 더욱 행복해 보였다.

글=이훈범 기자<cielbleu@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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