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산업 최대 약점, 해외 M&A로 돌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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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반도체 장비, 소재 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국가 기금인 '상하이 반도체 장비 소재 기금(이하 상하이 기금)'을 출범한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약점으로 꼽히는 장비, 소재 산업 육성을 위해 국가가 직접 나선 것이다.

중국 반도체 산업 [사진: 이매진 차이나]

중국 반도체 산업 [사진: 이매진 차이나]

중국 펑파이(澎湃) 신문에 따르면 이 기금은 향후 반도체 장비, 재료 기업 간 M&A를 집중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경쟁력이 약한 업체들을 통합하고, 서로 다른 분야의 업체들을 융합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시장 플레이어들을 만들어낸다는 계획이다.

M&A 타깃으로 해외 기업이 정조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그동안 해외의 우수한 반도체 기업을 인수,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단숨에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을 꾸준히 이어왔다. 이번 기금 조성을 통해 해외 M&A에 나설 실탄이 마련됐다는 분석이다.

자본으로 반도체 약점 극복한다

상하이 반도체 장비 소재 기금의 초기 규모는 약 100억 위안(1조 7000억원)으로 추산된다. 1차 펀딩을 통해 약 50억 위안을 조달한다는 방침이다. 중국의 국가 반도체 기금인 국가 반도체 산업 투자 기금, 상하이시, 난징은행, 완예기업(万业企业) 등이 출자자로 나선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금 조성을 통해 반도체 장비, 소재 분야가 중국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총아로 부상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반도체 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초대형 국가 기금이 이미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로 기금이 조성됐기 때문. 중국 정부는 앞서 지난 2014년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10년 간 약 170조원을 투자하는 국가 반도체 산업 투자 기금을 출범했다.

중국 반도체 산업 [사진: 이매진 차이나]

중국 반도체 산업 [사진: 이매진 차이나]

이와 관련해 기금 운용을 맡은 푸동 과학 기술 투자 공사의 주쉬둥 이사장은 "반도체 산업 투자 기금의 1차 투자가 곧 마무리된다. 사실상 추가적인 기금 조성이 불가능한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새로운 기금 출범을 강행했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 정부가 장비, 소재 분야에 큰 기대를 걸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장비·소재 분야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최대 약점이다. 실제 생산에 나서고 있는 업체가 소수이며, 생산 능력이 있어도 주문이 따라오지 않는다. 주문도 수익성이 약한 주변 제품이 주를 이룬다. 이번 기금은 중국 반도체 산업이 약한 고리를 강화한다는 데서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문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매년 5000억 위안(약 85조원) 이상의 자금이 반도체 분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이중 약 70%가 장비·소재 구매에 쓰인다. 그런데 정작 중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장비·소재의 대부분을 외국 기업들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 중국의 반도체 시장의 파이가 커질수록 해외 기업들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는 얘기다.

해외 장비·소재 기업 M&A 본격화

전문가들은 이번 기금 조성을 통해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해외 반도체 장비·소재 기업 사냥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웨스턴 디지털, 도시바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 인수전에 참여할 수 있었던 데는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자금 수혈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실제로 기금 운용을 맡은 푸둥 과학 기술 투자 공사는 중국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M&A 경험이 풍부한 기관 중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 증시에 상장된 반도체 기업을 인수, 중국 증시에 상장시키는 게 지금까지 이 회사의 주요 수익 모델 중 하나다. 지난 2013년에는 중국 반도체 공룡 칭화유니와 세계적인 칩셋 설계 회사인 RDA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놓고 M&A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 회사는 이번 기금 운용에 대해 "중국 산업 기금의 자본력을 십분 활용, 인수합병, 합자회사 설립 등의 방식을 통해 곳곳에 산재해 있는 반도체 장비·소재 업체들의 역량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고, 중국 반도체 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최근 중국 기업들의 해외 반도체 기업 인수가, 미국, 유럽 등 국가의 반대에 부딛혀 무산되고 있는 것에 대한 대책도 내놨다.

주쉬둥 푸동 과학 기술 투자 공사 이사장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능성이 희박한 물리적인 M&A 시도는 더이상 의미가 없다. 국가와 지역에 따라 다른 M&A 전략을 써야한다. M&A에도 우리가 내어주는 것(피인수), 우리가 가져오는 것(인수), 하나로 통합(합자회사 설립)하는 등의 다양한 방식이 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유럽처럼 차이나 머니의 M&A를 경계하는 곳에서는 물리적인 M&A 보다 중국 내에서 합자 회사를 세우는게 더 유효하다. 보다 안정적인 해외 M&A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 이사장에 따르면 최근 몇년 중국 전역에서 해외 반도체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한 대규모 반도체 산업 단지 조성이 이뤄지고 있다.

차이나랩 이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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