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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윤택 성추문 장소인 밀양연극촌 '황토방' 가봤더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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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씨 성폭행 의혹이 나온 밀양연극촌 '황토방' 모습. 위성욱 기자

이윤택씨 성폭행 의혹이 나온 밀양연극촌 '황토방' 모습. 위성욱 기자

 21일 오후 1시쯤 경남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 밀양연극촌 앞 주차장. 40~50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에 연극촌이 사용하는 대형 차량 한 대만 서 있었다. 밀양시 민병술 공보계장은 “평소 같으면 평일이어도 차량이 좀 있을 텐데 이윤택 대표의 추문이 불거진 뒤에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텅 빈 밀양연극촌 주차장. 위성욱 기자

텅 빈 밀양연극촌 주차장. 위성욱 기자

밀양연극촌 성벽극장. 위성욱 기자

밀양연극촌 성벽극장. 위성욱 기자

연극촌 정문으로 들어서자 성벽극장이라고 쓰인 거대한 벽이 보였다. 뒤에는 야외무대와 객석이 있었다. 밀양연극촌에서 각종 공연이 올려지는 주 무대다. 2010년 경 새로 지어지면서 이곳에 성벽극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밀양연극촌은 원래 폐교된 월산초등학교가 있던 곳이다. 이윤택 대표와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은 1999년 이곳에 입주해 밀양연극촌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숙식을 함께 해왔다. 이후 연극 공연과 학생 체험캠프 등을 운영하며 지역 명소로 자리잡았다. 2010년 성벽극장으로 리모델링하면서 대부분 외부로 빠져나가 현재는 4~5명의 단원과 가족들이 상주하고 있다. 성추문이 불거지자 밀양시는 지난 19일 사단법인 밀양연극촌과의 무료 위탁운영 계약을 해지해 이곳을 폐쇄했다.

이윤택씨가 거주하던 밀양연극촌 내 주택의 모습. 이 건물 뒤쪽에 딸린 작은 방이 피해자들이 부르는 황토방이다. 위성욱 기자

이윤택씨가 거주하던 밀양연극촌 내 주택의 모습. 이 건물 뒤쪽에 딸린 작은 방이 피해자들이 부르는 황토방이다. 위성욱 기자

이윤택 씨에게 피해를 당했다고 폭로한 여성들은 사건 장소로 이 곳을 주로 지목하고 있다. 지난 14일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10여 년 전 이 연출가에게 성추행 피해 경험을 폭로했다. 이어 연희단 거리패 옛 단원들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고백이 쏟아졌다.

김보리(가명)씨는 지난 17일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 연극·뮤지컬 갤러리에 ‘윤택한 패거리를 회상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19살이던 2001년과 20살이던 2002년 두 번의 성폭행을 당했다”며 “연희단거리패에 있을 때 황토방이라는 별채로 호출을 받아 수건으로 나체 닦기, 성기와 그 주변을 안마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배우 김지현은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자 단원들이 밤마다 돌아가며 (황토방에서) 안마를 했었고, 저도 함께였다”며 “2005년 전 임신을 했고, 조용히 낙태했다”고 고백했다.

이들이 언급한 황토방은 성벽극장 무대 뒤 오른쪽에 있는 ‘월산재(月山齎)’라는 단독주택에 딸린 작은 방이다. 이윤택 씨가 1999년부터 혼자 살았고, 2006년 경 부인과 딸 등 가족들이 옮겨오면서 함께 살았다고 한다. 예전에는 장작불을 때는 황토방 형태였지만 지금은 조립식 외관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밀양촌 관계자의 전언이다. 밀양연극촌 한 관계자는 “제가 2006년도에 연희단거리패에 입단했는데 그때쯤 이윤택 선생님의 부인과 딸 등이 오셔서 가족들이 월산재에 함께 거주하셨다”며 “지금은 돌아가신 이 선생님의 장모님이 그 방(황토방)에 사셨고, 이후 딸이 생활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황토방 내부 모습. 위성욱 기자

황토방 내부 모습. 위성욱 기자

황토방 내부에 붙은 요가 그림. 위성욱 기자

황토방 내부에 붙은 요가 그림. 위성욱 기자

월산재에는 최근까지 이윤택씨의 부인이 생활하고 있다가 사건이 불거진 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의 부인이 황급히 집을 빠져나간 듯 집 안에는 옷가지를 널어놓은 빨래대가 그대로 있었고, 주방 등에는 각종 부엌용품이 식탁 위에 가득했다. 옛 황토방 안은 침대와 책상이 있었고, 옷장 문에 요가 그림이 붙여져 있었다. 이 관계자는 “보통 7월에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가 열리는데 그때를 전후로 이윤택 선생님이 이곳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자주 찾으셨다”며 “그 외 시기에는 한 달에 1~2번 꼴로 찾아와 연극지도 등을 하셨다”고 말했다.

밀양연극촌 등에 따르면 2010년을 전후 인근 김해에 도요창작스튜디오, 부산 기장군 가마골 소극장, 서울 종로구의 30스튜디오 등 이윤택씨와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이 머무르며 연습할 공간이 추가로 더 생기면서 이씨도 이들 공간을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밀양연극촌 안내판. 위성우 기자

밀양연극촌 안내판. 위성우 기자

현재 밀양시 등 연희단거리패에게 공간을 무료 임대했던 자치단체들은 이윤택씨의 성폭력 의혹이 제기되자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밀양시는 지난 19일 밀양연극촌에 대한 무료위탁계약을 해지했다. 이에 따라 밀양연극촌이 주관하던 주말 상설 공연과 여름공연예술축제도 개최가 불투명해졌다. 김해시는 이윤택 전 감독이 대표를 맡아 위탁 운영하고 있는 김해시 생림면 도요리 도요창작스튜디오에 대해 지난 20일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부산 동구청도 비슷한 시기 초량동 이바구길 ‘인물사 담장’에 설치된 이윤택씨의 기념 동판도 철거했다.

밀양 연극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저희가 2006~2010년 사이에 연희단 거리패에 입단했는데 이 선생님에 대한 (성추문) 소문은 솔직히 계속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우리에게는 이곳이 삶의 터전인데 이제 여기를 나가야 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윤택씨 성추문 후 인적이 끊긴 밀양연극촌 주차장 모습. 위성욱 기자

이윤택씨 성추문 후 인적이 끊긴 밀양연극촌 주차장 모습. 위성욱 기자

한편 경찰은 21일 최근 이윤택씨 사건과는 별도로 16세 극단 단원을 성폭행한 의혹을 받는 경남 김해의 한 극단 대표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이 대표는 10여년 전 단원으로 활동한 당시 16세 여성을 장기간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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