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TWO JOBS, 나도 한 번 해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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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밀레니엄 힐튼 호텔 식음료부의 이승철(30.사진)씨. 고급 프랑스 레스토랑 '시즌즈'에서 서빙을 맡고 있는 그는 이 특급 호텔의 정규직원이다.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했고, 호텔 서너 곳에서 경력까지 쌓은 전문 인력. 말끔한 양복 차림으로 유연하게 홀을 누비는 그를 보고 있으면, '천생 호텔리어구나'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승철씨도 호텔 밖에서는 어엿한 사장님이다. 그는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 '굿데이'를 경영하고 있다. 소형 트럭을 개조한 이동식 노점에서 혼자 하는 장사이긴 하지만, 사장은 분명 사장. 승철씨는 벌써 3년 넘게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베테랑 '투잡스(Two Jobs)족'이다.

승철씨가 커피 장사에 뛰어든 것은 2002년 초. 힐튼 호텔로 자리를 옮긴 지 6개월째였던 그는 친구가 투잡스를 제의하자 주저 없이 받아들였다. 외환위기 직후에 졸업, 고스란히 겪어야 했던 취업대란과 정리해고의 쓰디쓴 경험이, '망해도 크게 망하지는 않겠다'는 계산과 더해져 내린 재빠른 결정이었다. 그는 당장 300만원을 꿔 장사를 시작했다.

물론 갑자기 투잡스족으로 사는 일이 쉽진 않았다. 특히 장사 시작 6개월 만에 친구가 빠지면서 더 고돼졌다. 본전을 뽑으려면 한 달 중 휴일인 8일 전부와, 저녁 근무인 7일의 낮시간을 몽땅 털어 넣어야 했다. 목 좋은 자리를 잡는 것부터 커피 기계를 다루는 것까지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때론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나' 하는 생각에 쓴웃음을 짓기도 했단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요즘 승철씨는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말한다. "투잡스는 나의 힘!"이라고. 몸에 익어도 일이 되긴 마찬가지다. 경쟁자가 많아지면서 수입은 되레 줄어 최근엔 꼬박 보름 장사를 하고도 50여만원을 손에 쥐기 힘들다. 그래도 그는 투잡스를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다. 아예 5년 후쯤엔 제대로 된 커피 전문점을 열 생각까지 하고 있다. 당연히 호텔에서도 매니저를 향해 열심히 뛰면서 말이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을 쪼개가며 열심히 사는 게 보람차요. 요즘처럼 모든 게 불확실한 세상에 또 다른 일을 하나 하고 있다는 것도 아주 든든하고요. 마음이 안정되니까 원래 직업에도 더 충실할 수 있죠. 모든 직장인에게 투잡스를 권하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상시화된 고용불안, 끝을 모르는 장기불황 …. 대한민국 직장인의 가슴은 늘 조마조마하다. 그래서일까. 요즘 직장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투잡스'란다. 쉽게 말해 부업. '혹시 잘리더라도 당당하게 걸어나가자'라는 생각을 너도나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쉬쉬해서 그렇지, 우리 주변에는 이미 '주경야경(晝耕夜耕)'을 하는 투잡스족이 제법 많았다.

글=남궁욱 기자<periodist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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