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센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봅슬레이 남자 2인승을 마친 뒤, 박수와 함성을 뒤로 한 채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이 때 자신을 응원하러 온 '소중한 분들'을 만났다. 둘의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을 보자 두 사나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곤 남은 남자 4인승에서 후회없는 경기를 다짐했다.
'한국 봅슬레이 간판' 원윤종(33·강원도청)-서영우(27·경기연맹)의 두 번째 올림픽 도전은 아쉽게 끝났다. 1~4차 주행 3분17초40으로 30개 조 중 6위에 올라 4년 전 소치 대회(18위)를 넘어선 역대 한국 봅슬레이 올림픽 최고 성적을 냈다. 그러나 메달을 목표로 달려왔던 이들 입장에선 아쉬움이 더 컸다. 19일 1차 주행에서 두 차례 벽에 부딪히는 실수로 11위에 머물렀던 게 뼈아팠다. 첫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남은 주행을 펼쳤지만 결과를 뒤집진 못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 이들의 질주를 응원하던 관중 사이엔 봅슬레이 '태극 듀오'의 두 부모님도 있었다. 원윤종의 아버지 원영안 씨와 어머니 박순애 씨, 서영우의 아버지 서정갑 씨와 어머니 최인화 씨는 올림픽에 나선 아들의 힘찬 질주를 현장에서 함께 지켜봤다. 수개월동안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했던 아들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부모의 마음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체육교사를 꿈꾸다 나란히 봅슬레이로 전향한 둘은 몸무게를 불리기 위해 하루 8끼를 먹어야 했고, 웨이트 트레이닝, 스타트 훈련 등 봅슬레이 선수가 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거듭해야 했다. 결국 이들은 2015-2016 시즌 세계 1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어떤 종목보다 경쟁이 치열한 봅슬레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들은 '자신과의 싸움'을 더 치열하게 이어가야 했다. 연중 300일 이상 국내외에서 훈련과 국제대회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그래서 부모님을 비롯해 가족, 지인들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비록 목표 달성은 못 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한 아들들에게 두 부모님은 따뜻하게 응원하고 격려했다. 서영우는 어머니와 포옹한 뒤에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눈물을 흘렸다. 지인의 품에 안겨 오열하다시피 한 모습에 주변 분위기가 숙연해졌을 정도였다. 여러 감정이 교차하면서 눈물을 흘린 '동생' 서영우를 보며 원윤종은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형님'다운 모습을 보였다.
원윤종은 "많은 분들이 오셔서 응원해줬다. 덕분에 정말 큰 힘이 됐다"면서도 "제가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서영우가 나를 믿고, 피눈물 흘려가면서 견뎌왔는데 나 때문에 순위가 내려간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도 했다. 거듭 미안하다는 형의 말에 서영우는 "좋은 경기 보여주셔서 감사하다"며 다독였다.
그렇다고 마냥 분위기가 무겁진 않았다. 아픔 속에서 희망을 찾았다. 서영우는 "처음 데뷔했을 때 시즌만 해도 절망적이었다. 외국 선수들의 벽은 높았고, 고장난 썰매를 타고다녔던 게 여기까지 온 거다. 비록 금메달은 아니었지만 좀 더 다듬으면 충분히 최상위권으로 갈 수 있겠다"고 말했다. 24·25일에 열릴 봅슬레이 남자 4인승에 대한 목표도 더 확고해졌다. 원윤종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4인승이 남았다. 마음을 다 잡고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마음을 다 잡으려는 두 아들을 향해 부모님들은 이렇게 말했다. "잘했어. 아직 한 경기 남았잖아. 끝까지 응원할게" 아들과 부모님의 5분 남짓 되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결코 다시 후회없는 레이스는 펼치지 않겠단 분위기가 느껴졌다.
평창=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