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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먹을때도 근엄한' 김은정, 울음 터뜨린 사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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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컬링대표팀 스킵 김은정(왼쪽)이 19일 스웨덴을 꺾은 뒤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눈물을 터트렸다. [강릉=박린 기자]

여자컬링대표팀 스킵 김은정(왼쪽)이 19일 스웨덴을 꺾은 뒤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눈물을 터트렸다. [강릉=박린 기자]

'엄근진.'

요즘 네티즌들이 한국여자컬링대표팀 스킵(주장) 김은정(28)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2시간30분 넘게 진행되는 컬링경기에서 김은정이 안경을 낀채 시종일관 엄격, 근엄, 진지한 표정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한 네티즌은 "김은정은 경기 중 체력보충을 위해 바나나를 먹을때도 근엄하다"는 댓글을 달았다.

18일 오후 강원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예선 대한민국과 중국의 경기. 한국 대표팀 김은정이 투구하고 있다.[강릉=연합뉴스]

18일 오후 강원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예선 대한민국과 중국의 경기. 한국 대표팀 김은정이 투구하고 있다.[강릉=연합뉴스]

한국여자컬링대표팀(세계 8위) 김은정은 19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스웨덴(5위)과 평창올림픽 예선 6차전에서 7-6 승리를 이끌었다. 긴장된 상황에서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마지막 7, 8번샷을 잘 성공시켰다. 한국은 세계 1위 캐나다, 2위 스위스, 4위 영국에 이어 세계 5위 스웨덴마저 쓸어버렸다. 한국은 스웨덴과 함께 나란히 5승1패를 기록, 공동 1위로 올라섰다.

한국여자컬링대표팀 주장 김은정. [중앙포토]

한국여자컬링대표팀 주장 김은정. [중앙포토]

김은정은 경기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 인터뷰에서 "이번 대회에서 제일 강한팀 스웨덴을 맞아 대량득점을 주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스킵으로서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샷을 해결해야된다고 생각했다"고 담담한 소감을 밝혔다.

'경기중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는 질문에 김은정은 "제가 경기 중 거울을 본적이 없어서"라고 운을 뗀 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표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 샷에만 집중해서 그런것 같다"고 말했다. 옆에있던 김민정 감독은 "예전에 캐나다의 팀 호먼이 표정변화가 거의 없는 우리팀을 보고 '로보트 같다'고 놀라워한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날 스웨덴 스킵인 안나 하셀보르그는 중요한 순간 실수를 연발했지만, 김은정은 침착하게 점수를 쌓아갔다. "영~~미. 영~~~미. 기다려~~~"처럼 의성여고 동창인 팀원 김영미의 이름을 목이 쉴만큼 외쳤다.

19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여자 컬링 예선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경기. 한국의 주장 김은정이 투구한 뒤 스톤 방향을 주시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19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여자 컬링 예선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경기. 한국의 주장 김은정이 투구한 뒤 스톤 방향을 주시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김은정은 인터뷰 막바지에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올림픽에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는데'란 질문을 받고서다.

김은정은 "우리 경북체육회 남자팀, 믹스더블팀, 여자팀 세팀이 나왔다.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힘든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안좋을땐 (내가) 왜 이거밖에 안될까 스트레스를 받기도했다"며 "하지만 거기에 휩싸여 잘못하면 저희만 손해고 저희만 바보가 된다고 생각했다. 김경두 전 대한컬링연맹 부회장님 등 주위에서 많은분들이 오랜시간을 기다려주셨다.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이 목표의식을 심어준다"고 말했다.

여자컬링대표팀은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힘든 시간을 겪었다. 지난해 집행부 내분으로 대한컬링연맹이 관리단체로 지정됐다. 홈 어드밴티지가 중요한 종목인데 강릉컬링센터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경기장 시멘트 바닥이 갈라져 개·보수를 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이렇다할 테스트이벤트도 치러보지 못했다. 아이스하키나 양궁처럼 연맹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다.

9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여자 컬링 예선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경기. 한국 선수들이 초반 앞서 나가자 주장 김은정(왼쪽에서 두 번째)이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9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여자 컬링 예선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경기. 한국 선수들이 초반 앞서 나가자 주장 김은정(왼쪽에서 두 번째)이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게다가 컬링 스킵은 야구의 마무리 투수만큼 부담이 큰 보직이다. 마지먁 7, 8번샷에 따라 팀의 운명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은정에게는 큰 트라우마가 남아있다. 김은정은 2014년 대표선발전을 망쳐 팀이 소치올림픽에 나서지 못했다. 상대선수가 넘어지며 스톤을 건드리는 바람에 멘털이 완전히 깨졌다. 실수를 연발한 김은정은 탈락한 뒤 자책하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김은정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당시엔 컬링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었다. 사흘간 감독님 집에 틀어박혀 건담과 레고를 조립하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한적 있다. 김은정은 지난해 중국과 삿포로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패한 뒤에도 눈물을 쏟았다.

대한민국 컬링 국가대표팀 김은정이 19일 오전 강원도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컬링 여자 예선 6차전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7대6으로 승리를 거둔 후 관중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강릉=뉴스1]

대한민국 컬링 국가대표팀 김은정이 19일 오전 강원도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컬링 여자 예선 6차전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7대6으로 승리를 거둔 후 관중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강릉=뉴스1]

2015년 기자와 처음 인터뷰한 김은정은 평소 굉장히 밝은 선수다. 남자대표팀과 번외경기를 치르면 경상도 사투리로 "오빠들이 우리 스톤을 다 때려부쉈네"고 말한다. 김영미가 "빙판을 닦는 우리가 만약 메달을 딴다면 청소기 광고를 찍을 수 있을까"라고 하면 김은정이 "요즘엔 로봇청소기가 나와 틀렸어"라고 농담을 던지는 식이다. 경기 중 김은정의 엄격·근엄·진지한 표정 뒤엔 아픔과 책임감이 숨어있다.

강릉=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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