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한 병원서 출산 뒤바뀐 어린이 10년만에 친부모 품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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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같은 날 한 병원에서 태어나 부모가 뒤바뀐 두 어린이가 어린이날을 앞둔 4일 10년만에 친부모를 되찾았다.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심판장 이보환 부장판사)는 4일 박종태씨(44·가명·회사원·서울상도동)가 둘째아들로 키워온 박정수군(10·가명·국교4년)을 상대로 낸 「친생관계 부존재확인」청구 심판에서 『박정수군과 김형신씨(35·가명·상업·안양시우수동)의 장남 김종석군(10·가명·국교4년)이 출생 이틀후인 78년9월6일 병원에서 퇴원할 때 부모가 바뀐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히고 박씨와 정수군은 친부자 관계가 없다는 심판을 내렸다.
이에 따라 두어린이는 서로 박·김씨성을 바꾸고 지금까지의 부모를 서로 바꿔 친부모를 찾게됐다.
이들의 「이상」을 처음 발견한 것은 박씨 부부로 정수군이 국교에 입학한 직후인 85년부터였다.
학교에서 혈액형 검사를 한 정수군이 A형이라며 부모의 혈액형은 뭐냐고 물었을 때였다.
박씨부부의 혈액형은 모두 0형. 유전학적으로 도저히 A형은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꺼림칙했지만 학교의 검사가 다른 사람 혈액형으로 잘못됐을 것이라고 믿고 지나쳐버렸다.
그러나 속이 탄 것은 어머니 고씨(38)였다. 표현은 안 했지만 남편 박씨가 자신을 의심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안했다.
정수군이 3학년이 되어 다시 똑같은 결과가 나오자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 고씨는 여름방학을 이용, 정수군을 종합병원으로 데리고 가 혈액검사를 직접 해보았으나 역시 A형으로 나타났다.
고씨는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의사등을 찾아가 물어보았으나 부모가 모두 O형이면 A형 자녀가 불가능하다는 답변뿐이었다.
결국 고씨는 정수군을 출산했던 안양의 병원을 찾아가 이같은 사실을 알리고 당시 출산기록카드를 보자고 요구했다. 병원측은 처음에 그럴 리가 없다고 버텼으나 고씨의 끈질긴 요구에 출산당시의 기록카드·부모의 혈액검사·출산아의 혈액형을 통해 정수군이 고씨의 아들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법원과 고씨는 추적 끝에 78년9월4일 이 병원에서 동시에 태어난 김형신씨의 아들이 정수군과 바뀌었을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에 착안, 이를 김씨에게 알렸다.
종석군을 데리고 병원에 온 김씨는 첫눈에 정수군이 자신을 빼어닮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청천벽력이었지만 역시 핏줄은 속일 수가 없었다.
종석군 역시 박씨의 얼굴모습 그대로였다. 10년이나 다른 집에서 자란 두 어린이는 처음에는 영문도 모르고 있다가 너무나 얼굴이 닮은 친아버지를 보고는 서먹서먹하던 표정이 금세 사라졌다.
한동안 괴로워하던 박씨와 김씨는 결국 아이들을 바꾸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10년간 기른 정을 서로 감사하고 앞으로 훌륭히 키우자는 뜻에서 의형제를 맺고 계속 왕래하며 두 어린이의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병원측은 얼굴대조 결과와 출산기록·혈액형 검사등의 증빙서류를 갖춰 병원측의 착오로 어린이가 바뀌었다는 기록을 작성해줬다.
박씨와 김씨는 호적정리를 위해 지난2월 동시에 법원에 심판을 청구,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새로 찾은 친부모와 처음으로 어린이날을 맞게 뵀다.
『10년이 지났어도 우선 얼굴이 아빠와 꼭 닮아 전혀 서먹서먹하지 않고 금방 친해지더군요. 정수도 깊은 정이 들어서 아들을 하나 더 얻은 기쁨입니다.』
어머니 고씨는 올해 어린이날은 결백도 입증하고 친아들도 찾아 어느 해보다 뜻이 깊다며 친부모를 찾아간 정수군에게 줄 선물을 꾸렸다.

<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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