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발랄 보더' 클로이 김, 부모님의 고국에서 날아오르다

중앙일보

입력

13일 강원도 평창군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 재미교포 클로이 김이 공중연기를 펼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13일 강원도 평창군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 재미교포 클로이 김이 공중연기를 펼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내려가서 아이스크림 먹어야지."
지난 12일 강원도 평창 휘닉스 스노우파크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예선. 겨울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 긴장감이 넘칠 법도 한데 선수는 슬로프 정상에서 스마트폰을 집어들곤 소셜미디어에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그리고나서 그는 반원통형 슬로프에서 더 완벽한 공중 묘기를 선보이고 압도적인 기량으로 결선에 올랐다. 결선에서 더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펼치고 금메달을 딴 소녀는 특유의 천진난만한 미소로 여유를 드러냈다.

13일 강원도 평창군 휘닉스파크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 1차에서 1위를 한 뒤 기뻐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13일 강원도 평창군 휘닉스파크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 1차에서 1위를 한 뒤 기뻐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여자 스노보드 천재' 클로이 김(18·미국). 200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서 한국인 부모님을 두고 태어나 자란 '밀레니엄 베이비' 클로이 김은 13일 열린 결선에서 마침내 첫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이미 우승이 확정된 3차 시기에 98.25점(100점 만점)을 기록한 그는 2위 류지아유(중국·89.75점)을 크게 따돌리고 '부모의 나라'에서 감격적인 순간을 맞았다. 그러면서도 클로이 김은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건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 하와이안 피자"라며 웃어보였다.

'스노보드 천재' 한국계 미국인 클로이 김이 13일 강원도 평창군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기자회견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평창=뉴스1]

'스노보드 천재' 한국계 미국인 클로이 김이 13일 강원도 평창군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기자회견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평창=뉴스1]

독보적인 실력으로 금메달을 딴 클로이 김을 두고 미국이 뜨겁게 반응하고 있다. '미국 스노보드의 센세이션(UPI)' '골든 걸(golden girl·ABC방송)' '겨울의 여왕(AOL)' 등 온갖 수식어가 달라붙었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기량 못지 않게 기존 선수들과는 달리 생기넘치고 발랄한 매력이 미국 내에서 더 크게 주목받았다. 경기 도중 클로이 김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트윗을 올리자 미국올림픽위원회는 "아이스크림이 클로이를 살렸다"며 리트윗했다. 결선에서도 클로이 김은 "경기 전 아침에 샌드위치를 덜 먹은 게 후회된다. 배고프고 화난다"고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고,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펼치자 미국에서 큰 화제를 뿌렸다.

클로이 김의 일상. [사진 클로이 김 인스타그램]

클로이 김의 일상. [사진 클로이 김 인스타그램]

클로이 김의 일상. [사진 클로이 김 인스타그램]

클로이 김의 일상. [사진 클로이 김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35만명이 넘는 클로이 김의 인스타그램엔 일반 10대들과 똑같은 일상 사진들이 올라온다. 또래의 소녀들처럼 패션, 화장 등에 관심이 많고, 늘 노란색이나 핑크색 등으로 머리색을 물들이는 것도 좋아한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하루'에 대해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고, 손톱이나 머리 손질을 한 뒤에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인터넷 영화를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클로이 김이 12일 평창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종목에서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평창=오종택 기자

클로이 김이 12일 평창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종목에서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평창=오종택 기자

영락없는 10대 소녀지만 슬로프에만 서면 클로이의 존재감은 더 달라진다. 13세에 최연소 스노보드 국가대표에 뽑혔을 때부터 미국에서 많은 주목을 받은 클로이 김은 월드 스노보드 투어(2014년), 겨울 익스트림게임(2015년) 최연소 우승으로 '스노보드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2016년 2월 US그랑프리에서 여자 선수 최초로 1080도 회전을 연속 성공해 100점 만점을 받은 뒤엔 '차세대 스포츠 스타'로 떴다.

미국 스키 국가대표 클로이 김(18)이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ESPN이 발행하는 'ESPN 매거진'에 표지 모델로 등장했다. [ESPN 매거진=연합뉴스]

미국 스키 국가대표 클로이 김(18)이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ESPN이 발행하는 'ESPN 매거진'에 표지 모델로 등장했다. [ESPN 매거진=연합뉴스]

2016년 주간지 타임은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명' 중 한 명으로 그를 선정했다. 평창올림픽 직전에 ESPN은 클로이 김을 표지모델로 선정했고, 올림픽주관방송사인 NBC는 지난 5일 미국프로풋볼(NFL) 수퍼보울 광고에 숀 화이트(스노보드), 네이선 천(피겨 스케이팅), 린지 본, 미케일라 시프린(이상 알파인 스키)과 함께 클로이 김의 사연을 담은 광고를 방영했다.

'스노보드 천재' 한국계 미국인 클로이 김이 13일 강원도 평창군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게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후 재미교포 아버지 김종진, 어머니 윤보란씨와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뉴스1]

'스노보드 천재' 한국계 미국인 클로이 김이 13일 강원도 평창군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게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후 재미교포 아버지 김종진, 어머니 윤보란씨와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뉴스1]

클로이 김이 미국을 열광하게 만든 건 '노력하는 천재'라는 스토리가 담겨있었기에 가능했다. 여기엔 클로이 김의 아버지 김종진(62) 씨의 헌신이 크게 뒷받침됐다. 26세이던 1982년 미국으로 건너간 김 씨는 주유소에서 일하면서 공과대학을 다녔다. ESPN은 지난 2016년 1월 ‘20대 초반 800달러(약 96만원)를 들고 미국에 건너와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다’고 김 씨를 소개했다. 4세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취미 삼아 스노보드를 배웠던 클로이의 재능을 본 김 씨는 딸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2007년 스위스로 스키 유학을 갔다.

유스올림픽 '하프파이프' 1위, 16세 미국 동포 클로이 김. 아버지 김종진씨와 함께 한 어린 시절의 클로이.  [사진제공=클로이 김 SNS]

유스올림픽 '하프파이프' 1위, 16세 미국 동포 클로이 김. 아버지 김종진씨와 함께 한 어린 시절의 클로이. [사진제공=클로이 김 SNS]

클로이와 김 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1시에야 집에 돌아오는 일상을 2년간 반복했다. 미국에 돌아가서도 김 씨는 하루 수백 ㎞를 6시간씩 차를 운전하면서 딸의 뒷바라지를 했다. 고생 끝에 딸의 올림픽 금메달을 현장에서 지켜본 아버지 김 씨는 딸이 용띠(2000년)에 태어난 걸 빗대 "딸에게 이무기가 용 되는 날이라고 격려했는데, 클로이가 금 여의주를 물었다. 꿈이 이뤄졌다"며 감격해했다. 클로이 김은 "아버지는 많은 것을 희생하셨다. 내가 만약 아버지였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한국계 미국 스노보드 국가대표 클로이 김. 임현동 기자

한국계 미국 스노보드 국가대표 클로이 김. 임현동 기자

클로이 김의 모토는 "다른 사람이 뭐라 해도 신경 쓰지 말라. 재미있게 즐기라"는 것이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법과 경영을 전공해서 스포츠 에이전트가 되는 게 꿈"이라는 계획도 갖고 있다. 확실한 꿈이 있는 딸이지만 아버지 김 씨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심어준다. 클로이 김은 김선이라는 한국 이름도 있다. 김 씨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학교도 미국에서 다녔지만, 핏줄은 핏줄이다. 클로이의 핏줄은 100% 순수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이제 두 나라를 모두 대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던 클로이 김은 "부모님의 나라에서 금메달을 따 많은 의미가 있다. 모두에게 즐거운 순간이다"고 말했다.
평창=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