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의 세상」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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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법률이 존중받지 못하고 법의 존엄과 권위가 땅에 떨어질 때 그 사회와 국가는 어떻게 될까. 두말 할 것도 없이 무질서와 혼란의 연속이 있을 뿐이다. 어쩌다가 겉으로 질서가 잡히고 평온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강제된 질서」에 불과하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이 이와 유사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번 양대 선거 때 무법 천지의 선거 양상에서도 넉넉히 확인됐다. 금권과 폭력이 난무하고 혼란과 무질서가 판치는 가운데 법은 증발하고 없었다.
「법대로」를 그처럼 강조했던 제5 공화국의 연이은 부정과 비리에서도 「무법」을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 이걸 두고 「법의 위기」라 아니할 수 없다.
사회규범으로서의 법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법 알기를 우습게 알고 서로가 안 지킬 때 그 사회, 그 국가는 위기적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스물 다섯 번째 맞는「법의 날」은 우리가 존중해야할 법이 왜 이렇게도 무력하게 되었고 법 경시풍조가 팽배하게 되었는가를 새삼 반성하는 계기가 되어야할 것이다.
법 경시와 불신이 뿌리 박힌 데는 첫째 법 제정에 정당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을 위해 제정해야할 법을 특정 계층이나 정권 유지를 위해 만들었고 제정 과정에서도 정당성을 상실한데 원인이 있다.
정권 안보를 위해 만든 법이나, 위헌적 법률과 독소 조항은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입법 과정 역시 국보위 등 비상 입법 과정을 통해 제정된 게 수없이 많다. 법은 모름지기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에서 충분한 토론과 여과 과정을 거쳐 국민적 공감과 합의로 제정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모든 사람이 그 법을 인정하고 지키려고 애쓴다. 입법 과정이 변칙적이고 비합법적이고 법 제정의 목적이 국민 아닌 다른데 있다면 합법성이나 정당성의 인정은커녕 오히려 법을 안 지키고 파괴하는 사람이 정의롭고 용감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무서운 현상도 야기된다. 이럴 경우 정부가 악법도 법이라며 법 지키기를 물리적으로 강요해 본들 저항과 법 불신만 쌓일 뿐이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수없이 경험했다.
둘째는 법 집행과 운용의 파행성이다.
「법 앞에 평등」이라는 법문처럼 법은 모든 사람에게 구별 없이 적용되어야 하고 공평 무사하게 운용되어야 한다.
이 같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법대로」를 그처럼 강조했던 장본인이 법을 깔아뭉개고 심지어 법 위에 군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무한대의 권력 앞에 법은 맥을 추지 못했고 권력은 항상 법 위에 존재했다. 탈법의 전형이라 할 얼마전의 새마을 부정사건이나 서울 시장의 구속사건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지 않는가.
경찰은 말할 것도 없고 검찰과 사법부가 제5 공화국에서 「시녀」라는 불명예를 뒤집어 쓴 것도 따지고 보면 법을 공평하게 운용하지 못했던데 기인한다. 국민의 법의식이나 감정이 법이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하며, 법이 정의롭지 못하거나 정의롭게 작용하지 않는 것으로 비추어질 때 그 법은 이미 죽은 법이다.
신설될 헌법 재판소는 앞으로 헌법과 시대 정신에 어긋나는 법과 위헌적 독소 조항들을 대폭 개폐해야할 것이다.
또 실현성이 없거나 지킬 수 없는 유명무실한 법, 시대에 뒤떨어진 법이나 법 체계에 어긋나는 법의 정리와 개폐도 시급한 과제다.
살아서 생동하는 법이 되게 하고 모든 국민이 법을 소중히 여기고 법을 생활화하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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