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생활 20년 맞은 조용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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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톱가수 조용필(38)이 올해로 가수생활 20년을 맞았다. 주린 배 움켜쥐고 기지촌을 떠돌던 무명가수가 20년만에 가요계를 주름잡는 슈퍼스타가 됐다. 꼭 스무해 전인 68년 봄 「무조건 음악이 좋아서」기타 하나 덜렁 둘러메고 무작정 가출했던 가수지망생 조용필. 이제 그는 한국의 정상을 차지하고 국제무대로 도약의 나래를 펴고 있다. 『지금도 그때를 돌아보면 눈물이 납니다. 막상 집을 뛰쳐 나왔지만 참 막연했었어요. 그러나 제가 좋아서 스스로 택한 길, 끝을 보겠다며 이를 악다물었지요.』
조용필은 그의 지난날들이 깨달음과 각고의 연속이었다고 회상한다. 늘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했고, 그때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해왔다고 말한다.
그는 그의 어릴적 친구·동창생들이 기억하듯 남달리 노래를 잘하지도 못했고, 뛰어난 목소리를 타고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폭넓은 음역 (3옥타브 반), 매력적인 탁경과 가성, 뛰어난 가창력을 갖추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오로지 그의 피나는 수련에 의해 조금씩 조금씩 얻어진 것들이다. 특히 대마초사건으로 겪었던 3년간의 공백기간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예나 지금이나 오로지 음악밖에 모릅니다. 취미하나 변변한게 없어요. 집과 레코드사·방송국을 오가며 노래하는 것이 전부일 정도입니다.』 조용필은 본래 기타리스트지망생이었다. 가출 후 1년여동안 파주 기지촌의 나이트클럽을 떠돌던 그는 69년 그룹 「파이브 핑거스」를 시작으로 「김트리오」「25시」 등에서 기타연주자로 일했다.
당시 가수 대역으로 몇차례 노래를 부른 것이 주위의 인정을 받았고 70년엔 그룹경연대회에서 『Unchanged Melody』를 불러 가창상을 받기도 했다.
74년에야 비로소 자신의 그룹 「조용필과 그림자」를 만들고 리드싱어로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76년 봄 동료의 권유로 우연히 취입한 노래 한 곡은 조용필의 운명을 크게 돌려놓았다. 바로 황선지작사·작곡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였다.
이노래는 마침 재일동포들의 모국방문 붐을 타고 부산의 음악다방에서부터 인기를 모으기 시작, 전국을 폭풍처럼 휩쓸었다.
무명가수 조용필은 이 한곡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막 피어나던 그의 꿈은 몇달도 채 못돼 무참히 꺾이고 말았다. 조용필은 대마초사건에 연루돼 77년 5월 은퇴공연을 갖고 가요계를 떠났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삶의 의욕까지 잃고 한동안 방황만 거듭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을 되찾았다. 어느날 TV에서 흘러나오는 민요 『한 오백년』을 듣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판소리 카세트를 사들으며 혼자 득음을 향한 수도승같은 고행의 길로 들어섰다. 산에 들어가 소리를 내지르다 목이 터져 피가 나오면 소금물로 달래며 다시 판소리 흉내를 냈다.
드디어 나름대로 소리를 터득했다. 그처럼 부럽던 「로드·스튜어트」같은 탁음을 얻었고 가성도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게 됐다.
기회는 다시 한번 찾아왔다. 79년말 해금되자 그가 만들어 부른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는 80년 가요계에 선풍을 일으켰다. 조용필의 재기를 확인케 해준 것이다.
이후 그가 발표하는 곡들은 해마다 잇달아 빅 히트했다.『촛불』 『미워 미워 미워』『고추잠자리』『한 오백년』『눈물의 파티』『친구여』『어제오늘 그리고 내일』『허공』 등.
그는 이 노래들로 해마다 유명한 가요제의 최고상을 거의 독차지해왔다. 그동안 받은 트로피만도 70개에 이른다.
조용필은 그야말로 「전천후가수」다. 간드러진 트로트로부터 강렬한 로크, 감미로운 발라드, 신들린듯한 재즈, 민요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요영역을 소화해낸다.
그의 노래들은 국내는 물론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 각국과 중공에서까기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번 서울프리올림픽쇼에도 유일한 한국인으로 세계의 유명연예인들과 경연한다.
그는 2∼3년전부터 국내보다는 일본에서 더욱 크게 활약하고 있다. 86년 가을 일본어로 취입한 『추억의 미자』는 요즘 각 인기차트의 정상권에 오르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세계무대가 제 목표입니다. 얼마전 일본의 CBS-소니에서 세계적 레코드 레이블인폴리그램으로 전속을 옮긴 것도 이때문입니다.』
내년 2월엔 영국에서 국내가수론 처음으로 세계시장을 겨냥한 신곡을 레코딩할 예정.
그는 7천만원짜리 벤츠를 타고 다닐 정도로 그동안 많은 돈도 벌었다. 재산이 수십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아기는 굳이 갖고싶지 않아요. 앞으로 국내·외를 돌아다니려면 아빠노릇도 제대로 못할것 같은데…』
4년전 결혼한 부인 박지숙씨(32)와 사이에 아직 아기가 없는데, 마치 『아기보다는 음악이 더욱 중요하다』는 결심인 듯 하다.<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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