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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재판」을 기억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난해 10월 우리 나라를 방문했던 세계성공회의 지도자 「로버트·런시」캔터베리대주교가 이한하면서 주고 간 선물이 내 책상 앞에 있다. 「토머스·베케트」대주교의 암살을 뜻하는 조그만 조각물인데 이 조각이 갖는 의미를 오늘에 와서 다시 한번 되씹어본다.
12세기 영국의 「헨리」2세 치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베케트」캔터베리대주교는 천주교를 압살하라는 왕의 명령에 불복, 「종교의 자유」를 고수하다 결국 암살 당하고 만다.
생각해 보면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로 해서 죽어갔음을 알 수 있다. 「간디」「마틴·루터·킹」「본·회퍼」등….
이렇듯 종교와 정치는 가깝게도, 그렇다고 멀리도 할 수 없는 철로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외형적으로 보면 종교나 정치는 모두 정의와 평화를 위해,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듯 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종교는 이상을 위해 현실을 살도록 요구하고, 정치는 현실을 통해 이상을 실현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이런 차이는 오랜 세월을 통해 나름대로의 역할을 분담하는 것으로 규정되어져 왔다. 결국 정교분리라는 이론은 오히려 정치도구화, 또는 종교도구화라는 슬픈 사실만 남기고 서로 상처만 주어왔다.
최근 KNCC(한국교회협의회)에서 발표한 「통일에 대한 한국교회의 견해」로 말미암아 그간에 하지 못한 이야기가 봇물 터지 듯 무성한 것도 바로 이런 종교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을 구분지은 데부터 이유가 있다고 본다.
분단을 통일로, 미움을 화해로 바꾸자는 이 선언은 그야말로 종교적 이상이요, 이것을 실현해 내도록 국민적 합의를 얻어내는 일이 바로 정치적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와 진보가 문제가 되고 방법론이 문제가 되는 것은 종교적 원의나 정치적 원의를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종교적 속성과 정치적 속성은 따로 구별할 수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함께 진지하게 이야기 하다보면 모든 것이 실타래 풀리듯 풀릴텐데 이것을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마음으로 조금은 서투르겠지만 총선에 대한 그간의 방송·신문매체의 천편일률적인 논평에 자극을 주는 뜻에서 세상의 흐름을 거꾸로 계산하는 정치적 바보(?)가 한마디 할까한다.
첫째로 이번 총선은 국민에게는 물론 정치인에게도 크나큰 교훈이 되었다고 본다. 「민성은 천성이다」는 교훈대로 하늘이 주신 놀라운 계시다. 민정당·민주당·평민당·공화당(곧 이 순서조차 바뀌겠지만)이 모두 선거결과에 따라 겸손하게 스스로의 모습을 돌이켜봐야 한다. 사태를 오판하지 말고 직시하라고, 시의적절한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었다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결코 서로를 얕잡아 볼 수 없도록 된 오늘의 결과를 절호의 기회로 삼고 각 당이 이 나라 백년대계를 신중하게 쌓아갈 것을 당부하는 마음 간절하다.
둘째로 항상 「솔로몬」의 재판을 기억해달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 친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아기를 살려내는 어머니의 마음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정말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하는 선량이라면 당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땀과 피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현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가장 강력한 입법부를 가지게 되었다. 주변의 물리적 변화가 개입되지만 않으면 국회는 그야말로 모든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토론의 광장으로 되어 그간에 거리로 뛰쳐나오던 모든 불안한 모습들이 척결되리라 믿는다.
세째 지역구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이다. 감정으로 했든 이성으로 했든, 사람을 보고했든 당을 보고했든 이를 치유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할 일이지 한숨을 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구조상 누가 이 망국의 법을 가져왔는지는 둘째 문제고 지금 정치인이나 행정각료나 국민들이 걱정할 일은 이것을 어떻게 대국적으로 풀어가느냐인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국민의 소리를 들었으니 과감한 정책투자를 폭넓게 수행해야 할 것이며 응어리진 가슴을 어떠한 방법으로든 해결해야 할 것이고, 야당은 가장 보기 좋은 모습으로 공존하거나 일치를 도모해서 정국을 화합의 양으로 이끌어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통일에 대한 논의를 광범위하게 넓혀서 온 국민의 뜻을 하나로 엮어 모든 지역갈등을 평화통일로 승화시키는 획기적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방자치제로 민주적 품성과 지역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게 된다면 이제 국회는 더 커다란 민족적 과제를 놓고 시름해야 이 민족의 앞길이 밝아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같은 정치에 무지한 형제들에게 이렇게 동의를 구하고 싶다. 하고싶은 말, 하고 싶은 일이 많겠지만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간에 「다된 밥에 코 빠뜨리는」경험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당장 무엇이 달라지기를 바라지 말고 성급하게 득달하지도 말자.
지금은 제일 억울한 사람, 제일 비참한 사람, 제일 목말라하는 사람에게 길을 비켜줄 때다. 그들이 목을 축이고, 그들이 마땅히 위로 받고 난 다음에 천천히 우리들의 이야기를 웃으면서 펼쳐 보이자.
견제와 안정, 이것은 두 마리의 토끼가 아니다. 견제가 있는 안정, 강요가 아닌 선택적 안정을 국민이 원하고 있음을 몸짓으로 증거해야 한다. 민주시대를 여는 성숙된 국민으로서 이 찬란한 조국의 앞날을 개척하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옷깃을 여미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자. 김성수<성공회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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