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어떡해요!] 코쿤 키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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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아이들은 원래 싸우면서 큰다는데, 요즘 아이들은 갈등 상황을 견뎌내지 못한다. 싸우고, 후회하고, 마음 졸이고, 용기 내고, 화해하고 등의 복잡한 과정을 경험할 기회가 적어서다. 그냥 혼자 놀겠다며 '스따'(스스로 '왕따'가 됨)를 자처하고, 결국엔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인터넷에 빠져든다. 남과 더불어 사는 능력을 못 기른 아이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코쿤(cocoon.누에고치)족'이 되고 있다.

#"경험 부족이 첫째 이유"

"'아이가 친구들과 노느라 학원 시간도 번번이 놓친다'며 속상해 하는 옆집 엄마가 부럽다"는 주부 김모(37)씨. 초등학교 4학년인 김씨의 외아들은 늘 혼자다.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에 와서 혼자 책 보고 혼자 게임을 하며 논다. 김씨는 "공부는 둘째치고 친구가 한 명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사회성 부족의 첫째 원인은 경험 부족이다. 친척.이웃과의 교류도 뜸한 단절된 핵가족에서 형제 없이 자라고, 방과 후엔 학원에 가느라 친구와 어울릴 시간이 없다. 대인관계의 기본기인 자기 조절 능력과 감정 표현력이 부족하게 마련. 복잡한 갈등 상황을 헤쳐나갈 문제 해결 능력도 없다. 이런 아이들은 '리셋(Reset) 증후군'의 함정에도 쉽게 빠진다.

한국청소년상담원 이호준 선임상담원은 "컴퓨터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리셋 버튼을 누르면 시스템이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친구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화해할 노력을 아예 하지 않고 '다른 친구 사귀지 뭐'라고 생각해버리는 아이가 많다"고 말했다. 참을성이나 책임감이 필요 없는 '리셋'해법을 몇 번 사용하다 보면 결국엔 혼자가 된다.

유아교육 컨설팅 업체 '요술램프' 윤미선 대표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영유아기에 엄마와 둘이서만 고립된 생활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인간관계의 폭을 넓히는 게 사회성을 기르는 첫걸음이라는 것. 윤 대표는 "친척.이웃 등과 어울릴 기회가 적다면 어렸을 때부터 동네 놀이터, 백화점 문화센터라도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을 많이 접하게 해주라"고 조언했다.

부모의 '오냐 오냐'하는 과잉보호도 사회성을 죽이는 데 한몫한다. 자신의 뜻을 꺾어 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대인관계에서 몇 번 속상한 경험을 한 뒤엔 더 이상 상처 받지 않으려는 방어수단으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자신감이 부족해도 원만한 대인관계가 힘들다. 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상이 있어 스스로 움츠러들기 때문이다. 아이의 자신감을 키워주려면 부모가 자녀의 시행착오를 인정하면서도 그 결과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남과 비교하며 혼내거나 자녀의 실패 사례를 확대 해석하는 일은 금물이다.

#"게임 중독의 덫을 피하라"

사회성 부족과 인터넷 중독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다니는 현상이다. 한국심리교육연구소 이세용 소장은 "사회성이 부족해 현실 세계에서 불안.긴장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일수록 가상현실인 인터넷 세계에서 게임의 즐거움과 흥분 등 감각적 성취 경험에 쉽게 빠져든다"고 진단했다. 또 현실 도피처로 선택한 인터넷에 몰입하는 시간이 길수록 실제 현실에서는 더욱 외톨이가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 소장은 또 "자녀가 게임 중독 증상을 보이면 이는 부모의 양육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모.자녀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관계인지, 일방적인 과보호나 간섭.잔소리를 주고받는 관계인지를 돌아보고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인터넷 중독은 일단 증상이 시작되면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중독 증상을 고치는 데 부모 힘으로는 역부족이어서 전문가를 찾아가야 할 경우가 많다. 그만큼 예방이 중요하다.

▶인터넷 게임을 아이의 선행에 대한 보상책으로 쓰지 마라 ▶인터넷 사용 시간을 아이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하도록 격려하라 ▶인터넷 게임을 대신할 만한 운동.놀이.여행 등을 개발하라 등이 한국심리교육연구소가 제안한 중독 예방법이다.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 우리 아이 사회성 키우려면

(1) 아이의 얘기에 귀기울여 준다

아이가 말할 때 대충 듣고 넘기기보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진심으로 경청한다. 아이가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아야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에도 큰 문제없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2) 분명하고 친절하게 얘기한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도 가르쳐야 한다. 아이에게 분명하면서도 따뜻하고 친절한 언어로 이야기하자. 어느새 아이는 부모를 따라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고도 따뜻하고 친절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3) 남과 잘 어울릴 땐 칭찬한다

아이가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남을 배려하는 행동을 했을 때 칭찬을 통해 행동을 강화시켜주자. 아이들은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받을 때 신이 나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한다.

(4)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어준다

할머니.할아버지 등 가족관계뿐 아니라 동네 또는 친척집 형.누나.동생에서부터 교육기관의 선생님과 친구들에 이르기까지 아이가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경험을 가능한 한 많이 만들어주자. 이들과의 생활을 통해 아이는 자연스럽게 공동체 생활의 기회를 갖게 된다.

(5) 자신감을 갖게 한다

긍정적인 자아개념이 있는 아이가 사회성도 좋다. 소심하거나 모든 일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아이는 성장하면서 또래 관계나 학교생활 등 여러 방면에서 자신 없는 자세로 임하기 쉽다, 내 아이만의 장점을 찾아 격려해주자. 또 아이가 즐겨할 수 있는 운동을 시켜보는 것도 좋다. 운동을 통해 자신감을 얻게 된 아이는 세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뛰어든다.

(6) 외모 콤플렉스를 조장하지 말자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 풍조 때문에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아이들은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린다. 외모 콤플렉스는 가족 등 주변사람들에 의해 알게 모르게 조장되는 경우가 많다. "얼굴이 어쩜 이렇게 까맣니" "웃으면 눈이 안 보이네" 등 아이의 외모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은 피한다.

(7) 고마움.사과의 표현에 익숙하게 해라

타인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 타인에게 잘못하거나 피해를 끼쳤을 때 바로바로 고마움을 표현하고 사과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한다. 이는 다른 이들과 어울려 사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사회성 교육이다.

*도움말='요술램프' 윤미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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