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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성폭력 고발자 김현, "성폭력 계속된 건 제재 받지 않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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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문화'에 실린 시 '괴물' (왼쪽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JTBC뉴스 캡처]

'황해문화'에 실린 시 '괴물' (왼쪽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JTBC뉴스 캡처]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움직임의 기폭제를 일으킨 김현 시인(38)이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단 내 성폭력이 계속된 이유에 대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16년 10월 문예지 ‘21세기 문학’ 가을호에 기고한 ‘질문 있습니다’라는 글을 통해 문단 내 여성혐오와 성폭력을 고발했다.

김 시인은 수년 전 한 원로시인이 대중강연 도중 주최 측의 여성 관계자를 불러 술을 가져오라고 했다고 기억했다. 그리곤 “술은 역시 여자가…”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김 시인은 “그때 그 말이 원로시인의 위트 있는 말, 농담 정도로 여겨지는 분위기라 놀랐던 기억이 있다”면서 “그 시인이 그게 문제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대중이 보고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술자리에서 농담하고 희롱하는 것을 ‘예술의 자유’로 잘못 인식한 문인들이 있었다”면서 “그들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환상이나 동경을 가졌던 일부 문인들은 그 모습을 답습했다”고 말했다.

최영미 시인이 지난해 시 ‘괴물’을 통해 원로시인의 성폭력을 고발했다는 사실이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문단 내 성폭력 실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김 시인은 이에 대해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말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는 “2016년 이후 문단 내 성폭력 증언들이 터져 나왔고, ‘미투’운동이 일었고 서지현 검사의 폭로가 있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최영미 시인의 증언까지 이어진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몇 년 전부터 젊은 문인들 사이에서는 성폭력, 여성혐오 발언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움직임이 일었다고 김 시인은 전했다. 그는 “2016년 고발 글을 쓸 때 사회 각 층위에서 여성혐오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고 있었다”며 “‘그렇다면 문학 장에서는 되돌아볼 것이 없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 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해보자고 해서 나온 글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문단 내에서도 이미 이 문제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글을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 이후 변화가 생겼을까. 그는 “단적으로는 술자리가 줄어든 것 같다”며 “또 선배 문인들도 전혀 인식이 없다가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 큰일 난다’거나 ‘시대가 바뀌었다’는 인식 정도는 생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피해를 증언하고 고발한 당사자들이 무고나 명예훼손 등 소송에 휘말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라 했다.

김 시인은 “연대하는 문인들이 치료나 상담, 법률 전문가가 아니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한계를 느꼈다”며 “피해자들이 상담하고 법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구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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