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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무르는 En선생"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 보니 (전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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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JTBC '뉴스룸']

[사진 JTBC '뉴스룸']

문단 내 성추행을 비판하는 시 '괴물'을 발표한 최영미 시인이 화제다.

최영미 시인은 지난 6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괴물'이라는 시를 쓰게 된 이유를 밝혔다.

최영미 시인은 "황해문화사로부터 시 청탁을 받았는데, 거기서 페미니즘과 관련된 시를 써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제가 고민을 좀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이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면 내가 작가가 아니다. 내가 정말 가장 중요한 한국 문단의 문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에는 'En선생'이 등장한다. 시에는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는 내용이 있다.

'뉴스룸'에서 최영미 시인은 "현실과 문학작품은 별개다"라고 하면서도 "당사자로 지목된 문인이 제가 시를 쓸 때 처음 떠올린 문인이 맞다면 굉장히 구차한 변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홍수민 기자 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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