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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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뜨겁고도 길었던 정치도정은 끝났다. 지난 3년간 우리는 험난했던 개헌파동과 대통령선거, 총 선거를 겪으면서 나라살림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우선 국민들이 들떠 있었다. 개헌을 하느냐 마느냐, 그리고 한다면 어떤 형태로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사분오열 돼 있었다.
이 과정에서 생긴 대립과 갈등은 한때 나라를 위기에 몰아 넣었었다. 외부의 간섭과 내부의 폭발직전에 6·29선언으로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이런 분위기는 12·16대통령 선거와 4·26총 선거에서 재연됐다. 대통령 직선이나 단일선거구 총 선은 모두 16년만에 치러진 행사였다는 점에서 더욱 열기가 높고 국민들을 들뜨게 했다.
이와 함께 행정도 크게 이완됐다. 그 같은 사회분위기에서 공무원들만 차분히 앉아 일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권력이양에 따른 행정누수현상을 겪어야 했다.
정부교체와 선거를 계기로 공무원들의 자리바꿈도 불가피해졌다. 그로 인한 행정의 공백 내지 교착현상도 어쩔 수 없었다.
경제적 혼란도 컸다. 정치국면의 민주화는 산업분야에 파급되어 노사분규가 잇따랐다. 작년 8월의 쟁의사태는 건국이래 최대의 노사분규였다. 양측의 노력으로 위기는 넘겼으나 그런 고비는 계속 겪게 될 것이다.
두 차례의 선거에서 뿌려진 돈은 통화팽창의 혼란도 가져왔다. 어느 정도의 화폐가 어떻게 방출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로 인한 인플레와 통화질서 교란은 누구나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도다.
그러나 쉽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 정도는 민주화에 따른 당연한 대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 총 선으로 제6공화정 출범의 주요 일정은 모두 끝났다. 이제부터는 수습단계다. 하루빨리 새 국회를 소집하여 원을 구성하고 개각도 단행하여 새로운 기분으로 수습작업을 펴 나가야 한다.
첫째는 사회기풍의 쇄신이다. 국민들은 들떴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새 정부와 새 의회의 활동에 적극 협력하여 함께 새 시대를 열어 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새로 강화된 야당의 책임성도 중요해졌다.
이제는 감정과 원한을 씻고 각기 제자리로 돌아가 국가와 사회로부터 부여된 소임을 충실히 이행할 단계다. 이런 국민적 자세 없이는 새 시대 건설은 불가능하다.
둘째는 행정기강의 확립이다. 문란했던 질서를 회복하여 바르고 능률적인 공무체계를 세워야 한다.
권력교체기에 발생한 행정적 과오를 철저히 점검하여 잘못은 바로잡고 책임자를 엄벌하는 조치도 잊어서는 안 된다.
세 째는 경제질서의 강화다. 노사간의 불화와 분규를 해결하고 정치로 인한 경제적 교란을 조속히 치유해야 한다.
민주화에 발맞추어 정치와 경제, 정부와 기업간의 관계도 재정립돼야 한다. 경제성장의 초창기에 요구됐던 국가권력의 지원과 정부기관의 간섭도 지양될 단계가 됐다. 경제계는 기업경영과 노사관계, 대외진출을 스스로 책임지고 해결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
이번 총 선으로 정치의 역관계가 크게 바뀌었다. 협상과 정치력이 더없이 중요해졌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 지도자들은 애국적 사명감에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
세계가 지금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민 의에 의해 탄생된 제6공화정은 새로운 도약단계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여야, 민 관이 하나가 되어 들뜬 과거를 한시바삐 정리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함께 전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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