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평창 talk]라커룸에는 BTS 노래, 레드벨벳 노래 흥얼거리는 北선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5일 오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5일 오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라커룸에서는 신나는 케이팝이 흘러나와요. 방탄소년단(BTS) 노래를 자주 틀어요."

4일 관동하키센터에서 만난 평창올림픽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관계자가 전한 이야기에요. 이날 단일팀 훈련에서 한 북한선수는 걸그룹 레드벨벳의 '아이스크림 케이크'란 노래를 흥얼거렸어요. 북한선수는 한국선수에게 "시원하니 않네?"라고 묻기도했죠.

5일 오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세라 머리 감독이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5일 오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세라 머리 감독이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훈련 막판엔 축구 페널티킥 같은 '슛아웃(승부치기)'이 이어졌는데요. 북한 여송희가 나오자 한국선수가 "여송희 언니 힘내요"라고 외쳤어요. 한국 고혜인이 골을 터트린 뒤 벤치로 돌아오며 "박수 안쳐줘?"라고 말하자 남북 선수들은 꺄르르 웃기도했죠.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하는 여자 아이스하키팀 이진규, 박윤정 선수가 가슴에 한반도기를 붙인 단복을 입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하는 여자 아이스하키팀 이진규, 박윤정 선수가 가슴에 한반도기를 붙인 단복을 입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이틀 전 미국 입양아 출신 박윤정(영어명 마리사 브랜트)과 재미교포 이진규(영어명 그레이스 리)는 북한 김은향과 다정하게 셀카를 찍고, 이진규와 김은향은 어깨동무를 하고 링크를 빠져나갔어요.

여자 아이스하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구성된 뒤 "평화에 밑거름이 될 것", "정치쇼에 불과하다"는 찬반논란이 여전히 뜨거운데요. 빙판 안에서 남북선수들은 빠르게 녹아들고 있어요. 단일팀이 구성된지 2주째인데요. 직접 훈련을 지켜보니 '보여주기식'이 아니란게 느껴졌습니다. 헬멧 뒤 적힌 번호가 없다면 남북선수들을 구분하기 쉽지 않을 정도죠.

2015년 중국 우한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남북 여자축구 대표팀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한치 양보 없는 접전을 펼쳤다. 그러나 경기장 바깥에선 진한 우정을 나눴다. 시상식 후 1988년생인 김도연·조소현·권하늘·전가을·이은미(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은 동갑인 북한 공격수 나은심(오른쪽)과 다정하게 셀카를 찍었다. [사진 김도연]

2015년 중국 우한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남북 여자축구 대표팀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한치 양보 없는 접전을 펼쳤다. 그러나 경기장 바깥에선 진한 우정을 나눴다. 시상식 후 1988년생인 김도연·조소현·권하늘·전가을·이은미(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은 동갑인 북한 공격수 나은심(오른쪽)과 다정하게 셀카를 찍었다. [사진 김도연]

3년 전 중국 우한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때였어요. 1988년생 동갑으로 국제대회를 치르며 정이 쌓인 한국 조소현과 북한 나은심은 시상식에서 몰래 대화를 나눴죠.

"나 보고 싶었다며? 근데 왜 말 안 걸었어?"(나은심), "응. 그냥. 크크. 근데 다들 평양 살아?"(조소현), "응. 평양 살아. 지난달 여자 월드컵이 열린 캐나다 좋았어?"(나은심), "그럼. 좋았어."(조소현), "머리카락은 왜 잘랐어?"(나은심).

'평양'을 '서울'로 바꾸면 평범한 소녀들의 수다 같은, 남북 여자축구 대표팀 선수들의 대화였죠. 당시 한 한국선수는 "북한전에 나설때면 '얘네가 만약 지면 정말 탄광에 가는 게 아닐까'라며 복잡한 감정이 생긴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정부가 우리 선수들과 사전 교감없이 일방적으로 단일팀을 급조한 점은 분명 잘못됐습니다. 국가대표 하루수당 6만원을 받으며 올림픽만 바라본 한국선수 23명 중 최소 4명은 무장도 입지 못한채 관중석에서 지켜봐야합니다. 그래서 단일팀 관련 기사 댓글에는 여전히 비판 의견이 우세합니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4일 오후 인천 선학링크에서 스웨덴과 친선 평가전을 벌였다. 단일팀 박종아가 1-2로 따라붙는 골은 넣은 후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뻐하고 있다. [인천=사진공동취재단]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4일 오후 인천 선학링크에서 스웨덴과 친선 평가전을 벌였다. 단일팀 박종아가 1-2로 따라붙는 골은 넣은 후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뻐하고 있다. [인천=사진공동취재단]

이런 상황에서 10·20대 한국 선수들은 북한 선수들을 팀원으로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떠밀리듯 내려온 북한선수들은 볼이 빨개질 만큼 훈련에 충실히 임하고 있습니다. 남북선수들은 경기 전 구호로 "팀 코리아"를 외치고, 훈련이 끝난 뒤 세라 머리(캐나다) 감독에게 "차렷 경례"를 합니다.

남북선수들은 정치이념을 떠나 순수하게 스포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단일팀은 10일 스위스와 평창올림픽 첫 경기를 치릅니다.

강릉=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