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커룸에서는 신나는 케이팝이 흘러나와요. 방탄소년단(BTS) 노래를 자주 틀어요."
4일 관동하키센터에서 만난 평창올림픽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관계자가 전한 이야기에요. 이날 단일팀 훈련에서 한 북한선수는 걸그룹 레드벨벳의 '아이스크림 케이크'란 노래를 흥얼거렸어요. 북한선수는 한국선수에게 "시원하니 않네?"라고 묻기도했죠.
훈련 막판엔 축구 페널티킥 같은 '슛아웃(승부치기)'이 이어졌는데요. 북한 여송희가 나오자 한국선수가 "여송희 언니 힘내요"라고 외쳤어요. 한국 고혜인이 골을 터트린 뒤 벤치로 돌아오며 "박수 안쳐줘?"라고 말하자 남북 선수들은 꺄르르 웃기도했죠.
이틀 전 미국 입양아 출신 박윤정(영어명 마리사 브랜트)과 재미교포 이진규(영어명 그레이스 리)는 북한 김은향과 다정하게 셀카를 찍고, 이진규와 김은향은 어깨동무를 하고 링크를 빠져나갔어요.
단일팀이 구성된 뒤 "평화에 밑거름이 될 것", "정치쇼에 불과하다"는 찬반논란이 여전히 뜨거운데요. 빙판 안에서 남북선수들은 빠르게 녹아들고 있어요. 단일팀이 구성된지 2주째인데요. 직접 훈련을 지켜보니 '보여주기식'이 아니란게 느껴졌습니다. 헬멧 뒤 적힌 번호가 없다면 남북선수들을 구분하기 쉽지 않을 정도죠.
3년 전 중국 우한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때였어요. 1988년생 동갑으로 국제대회를 치르며 정이 쌓인 한국 조소현과 북한 나은심은 시상식에서 몰래 대화를 나눴죠.
"나 보고 싶었다며? 근데 왜 말 안 걸었어?"(나은심), "응. 그냥. 크크. 근데 다들 평양 살아?"(조소현), "응. 평양 살아. 지난달 여자 월드컵이 열린 캐나다 좋았어?"(나은심), "그럼. 좋았어."(조소현), "머리카락은 왜 잘랐어?"(나은심).
'평양'을 '서울'로 바꾸면 평범한 소녀들의 수다 같은, 남북 여자축구 대표팀 선수들의 대화였죠. 당시 한 한국선수는 "북한전에 나설때면 '얘네가 만약 지면 정말 탄광에 가는 게 아닐까'라며 복잡한 감정이 생긴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정부가 우리 선수들과 사전 교감없이 일방적으로 단일팀을 급조한 점은 분명 잘못됐습니다. 국가대표 하루수당 6만원을 받으며 올림픽만 바라본 한국선수 23명 중 최소 4명은 무장도 입지 못한채 관중석에서 지켜봐야합니다. 그래서 단일팀 관련 기사 댓글에는 여전히 비판 의견이 우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10·20대 한국 선수들은 북한 선수들을 팀원으로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떠밀리듯 내려온 북한선수들은 볼이 빨개질 만큼 훈련에 충실히 임하고 있습니다. 남북선수들은 경기 전 구호로 "팀 코리아"를 외치고, 훈련이 끝난 뒤 세라 머리(캐나다) 감독에게 "차렷 경례"를 합니다.
남북선수들은 정치이념을 떠나 순수하게 스포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단일팀은 10일 스위스와 평창올림픽 첫 경기를 치릅니다.
강릉=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