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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폐회식장에 지붕이 없기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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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지영 아트팀 차장

이지영 아트팀 차장

9일 겨울올림픽 개회식을 앞두고 온통 추위 걱정이다. 지난 3일 개회식 리허설에 다녀온 사람들은 “차원이 다른 추위”라며 혀를 내둘렀고, 올림픽조직위도 방한 대책에 비상이다. 이게 다 개·폐회식이 열리는 강원도 평창군 횡계리 ‘올림픽플라자’에 지붕이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지붕을 안 만든 걸까.

일차적인 이유는 예산 절감을 위해서다. 올림픽플라자는 올림픽 이후 해체하는 임시 건물이다. 인구 4만여 명의 군 지역에서 향후 관리와 활용이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건축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붕을 없앴지만, 1000억원을 들여 가건물을 짓는 것 자체가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많았다. 개·폐회식장을 인근 도시 강릉에 ‘제대로’ 짓자는 제안은 2014년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올림픽의 복수 도시 개최를 허용하는 ‘어젠다 2020’을 발표하면서 더욱 힘을 받았다. 하지만 그해 12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분산 개최는 없다”고 못 박은 이후 관련 논의는 중단됐다.

개·폐회식장에 지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2016년 본공사 착공 전까지 꾸준히 제기됐다. 평창이 지역구인 염동열 자유한국당 의원은 “대관령에서 자란 사람 입장에서 겨울밤 야외 개회식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100억∼150억원 정도 더 투자하면 지붕을 만들 수 있었는데, 여야 의원 모두 나를 지역구 예산 욕심내는 사람 취급했다”고 말했다. 또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설계한 류춘수 이공건축 대표는 2014년 평창올림픽조직위의 기본설계 구상에 대한 자문에 응하며 “지붕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보냈지만 아무 답변이 없었다고 했다. 당시 그는 예산을 조직위 초안보다 줄이면서도 지붕을 만든 개·폐회식장의 개념설계를 완성해 참고인으로 국회에 출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의원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지붕 없는 개·폐회식장의 심각성을 자각한 건 지난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다. 노태강 문체부 제2차관은 “지금이라도 지붕을 씌울 수 없느냐고 했지만 지붕 하중을 견디려면 기초공사부터 새로 해야 한다고 해서 포기했다. 의자 전체에 열선을 까는 방안도 고려해 봤는데 평창의 변전소 용량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방풍막과 핫팩·판초우의·무릎담요 등에 의지해 4만여 명의 참석자가 대관령 칼바람과 정면승부를 벌이게 됐다. 누구의 무책임과 무관심·무능이 이런 비합리적 사태를 빚었는지 꼼꼼히 백서로 남겨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만약 개·폐회식장에 지붕만 있었다면 지금 평창의 날씨는 하늘이 도운 날씨라며 칭송을 받았을지 모른다. 겨울올림픽을 망치는 날씨는 혹한이 아니라 이상고온이다. 성백유 올림픽조직위 대변인에 따르면 이런 한파가 최고의 설질(雪質)을 만든다고 했다. 선수들의 선전을 기대한다.

이지영 아트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