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기자의문학터치] 아날로그인 척…고단수 디지털 작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김연수가 "문태준은 공부를 잘해서, 김중혁은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아서 싫었다" 운을 떼면, 김중혁은 "아이고 선배님, 왜 이러십니까?" 너스레를 떤다. 그러면 소 닮은 눈의 문태준, 눈만 껌벅댄다(김중혁은 2000년, 김연수는 93년, 문태준은 94년 등단했다).

외모만 말하자면 김중혁이 개중 낫다. 키도 훤칠하고, 도수 없는 검은 뿔테 안경으로 멋 부릴 줄도 안다. 연전에 홍대 앞 문화에 관한 책을 낸 이력에서 짐작되듯, 홍대 앞 분위기와도 가장 어울린다. 잡기에도 능하다. 어지간한 대중음악 족보는 다 꿰차고 있으며, 영화광이고, 그림도 제법 그린다. 이러다 보니 친구들보다 등단이 늦은 것이다.

자잘한 문단 일화를 꺼내든 건, 소설만 읽어서는 김중혁을 아날로그형 인간으로 오해할 수 있어서이다. 실제로 그의 단편들에서 보이는 라디오.자전거.타자기.LP판 등속에 관한 애착의 정도는 페티시즘(fetishism)에 가깝다. 작가 스스로 박물관.도서관.전시관에 열광하는 '관(館)매니어'라고 밝힌 적 있고, 책 제목도 '무용지물 박물관'일 뻔했다가 '칙칙하다'란 의견을 수용해 발랄한 이름의 등단작으로 바꾼 것이다.

하나 김중혁은 디지털 인간이다. 또래 문인 누구보다 첨단문명에 익숙하다. 그의 홈페이지(www.penguinnews.net)에 가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골동품 따위에 집착한 것처럼 뵈는 건 모종의 문학적 전략 때문이다. 전복적 사고 같은 것 말이다.

우선 사물 중심의 서사 자체가 하나의 반란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로 인물의 캐릭터가 드러나듯, 인물은 사물을 거친 뒤에야 의미를 획득한다. 독자적 의미를 갖춘 건 대체로 사물이다. 그리고 그 의미란 것도 여태 익숙했던 바와 영 딴 판이다. 컴퓨터와 타자기 중 더 효율적인 건 타자기라는 식이다. 독자적 의미의 사물이란 것도, 앞서 언급한 대로 요즘엔 한물 간 것들이다.

의외로 소설은 쉬이 읽힌다. 통통 튀는, 때론 철학적이기도 한 주제를 차분한 문장이 받쳐주고 있어서다. '마지막이란, 언제나 조금 길게 느껴지니까' 같은 대목에선 시적 감수성도 읽힌다. 막 첫 창작집을 낸 신예를 주목하는 이유다.

손민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