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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2만4000여 미혼모가 살기 힘든 나라, 대한민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광주광역시 모 아파트에서 발생한 한 여대생의 ‘신생아 구조 자작극’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미혼모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여성은 언니 집 화장실에서 혼자 아기를 낳은 뒤 “버려진 아이를 데려왔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이 났다. 혼자 키울 자신이 없고 막막하자 일을 낸 것이다. 출산 때까지 가족·친구 그 누구도 임신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신체적 변화를 숨기느라 어떤 고통을 겪었을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전국적으로 영아 유기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6년(2011~2016)간 718건이 발생했다. 첫째를 유기해 처벌을 받고서도 둘째마저 버린 여성, 아기를 쓰레기통에 버린 여고생도 있었다. ‘베이비 박스’에 갖다 놓은 새 생명도 같은 기간 1005명으로 집계됐다. 연간 300명 가까운 아기가 버려지는 상황이다.

이런 비극은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부실한 사회보호망 탓이 크다. 젊은이들의 가치관·결혼관은 서양화되고 있지만 미혼모는 개인 문제이고 여자만의 책임이며 부도덕하다는 인식은 꿈쩍 안 한다. 그러다 보니 전국 2만4487명(2015년 기준)의 미혼모는 사회적 냉대와 차별에 눈물을 쏟는다. 월평균 소득이 78만5000원에 불과해 경제적으로도 어렵다. 사회보호망을 전면 손질해 체계적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불행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무엇보다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미국과 유럽처럼 미혼모와 동거 커플까지 가족 형태로 인정하고 양육·복지 혜택을 늘려야 한다. 네덜란드는 정부가 집을 주고, 병원비를 대주고, 직업교육까지 해주며 보호한다. 16년째 초저출산국(출산율 1.3명 이하)의 늪에 빠진 우리는 아기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 지난해는 신생아 수가 역대 최저인 35만 명대로 주저앉았다. 아기의 탄생은 온 마을의 축복인 동시에 책임감의 시작이다. 미혼모들의 아기도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