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새내기 대학생 조혜연 프로기사 ‘캠퍼스 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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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여성 강자 조혜연(사진) 6단의 얼굴에선 요즘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올해 고려대 영문학과에 입학한 조혜연은 새로 시작한 대학생활과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 그야말로 행복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침에 학교에 가 오후 7시까지 강의를 듣고 집에 와선 과제를 준비한다. 과묵하고 약간 우울하기조차 했던 조혜연이 공부를 하며 "행복하다"는 말을 연발하자 요즘엔 집안 전체가 화창하기만 하다.

그러나 조혜연은 오는 20일엔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과 여류국수전 결승 2국을 두어야 한다. 당연히(?) 학교를 쉬고 온몸을 던져 싸우는 승부사로 돌아가야 한다. 조혜연과 루이 9단은 국내 여성 일인자 자리를 놓고 몇년 전부터 쉴새없이 맞붙고 있다. 올해 여류명인전 결승에선 조혜연이 1대2로 졌다. 국수전도 0대1로 밀리고 있어 20일 지면 우승컵을 내줘야 한다.

사실 이 같은 피말리는 승부에 대비하려면 조혜연은 학교가 아니라 남자기사들이 우글거리는 연구실로 가야 한다. 하루 종일 바둑과 살아야 한다. 하지만 조혜연은 요즘 공부에 푹 빠져 있다. 12세 때 프로가 된 이래 '반드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려 오다가 여유롭고 평화로운 다른 세계에서 그간 느껴보지 못한 진한 행복을 느끼고 있다.

올해 6명의 프로기사가 새로 대학에 들어갔다. 고근태.윤준상.이영구 4단이 외국어대에 들어갔고 여성기사인 김혜민 3단, 백지희 초단이 명지대 바둑학과에, 조혜연 6단이 고려대에 들어갔다. 물론 특기생 케이스다. 외국어대는 한해원 2단, 조한승 8단, 박정상 5단, 최철한 9단, 원성진 7단 등 기존의 쟁쟁한 유명 기사들 외에 이번에도 신흥 강자 3명을 받아들여 프로기사가 8명으로 늘어났다. 고려대는 김명완 8단까지 2명, 성균관대 1명(김효정 2단), 명지대 2명으로 대학생 프로기사는 모두 13명이 됐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조혜연 6단처럼 행복한 대학생활을 하는 건 아니다. 최정상급인 최철한 9단의 경우 지난해 학교를 거의 가보지 못했다. 실은 대부분의 프로기사가 학교에 적은 두었지만 강의를 제대로 듣지는 못한다. 격렬한 승부에 우선적으로 몰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학교생활을 제대로 해보고 싶은 욕망을 갖고는 있지만 눈앞의 승부가 워낙 긴박해 몸을 뺄 수 없는 것이다. 실제 명지대 바둑학과엔 2000년도부터 11명의 프로가 입학했지만 올해의 신입생 2명을 제외한 9명은 현재 모두 휴학 중이다.

외국어대 중국어과에 다니는 인기 여류기사 한해원 2단은 주업이 승부보다는 방송이기에 동아리 활동까지 할 정도로 학교를 제대로 다녔고 1년 후면 졸업장을 받게 된다. 한 2단은 " 대학생활은 재미도 있고 유익하다. 그러나 극단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일류 승부사들에겐 이 모든 게 그림의 떡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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