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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대신 귀 연 이낙연 총리..."정부 혁신 실감시켜야"

중앙일보

입력

지난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외교안보 상황과 남북관계 개선'을 주제로 진행된 업무보고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외교안보 상황과 남북관계 개선'을 주제로 진행된 업무보고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정부가 지금까지 규제 혁신하겠다고 말만 했지, 실제로 한 게 뭐가 있나요. 현장에선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민간 전문가 초청, 쓴소리 경청 후 답변 #'하얀 스케이트' 부처별 개인기도 눈길

지난 24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차 정부 업무보고 현장. 민간 참석자 한 명이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직접 마이크 스위치를 켰다. “앞으로는 현장에서 체감하실 수 있도록 확실히 추진하겠습니다”며 몸을 낮췄다.

이날뿐 아니라 지난 18일 시작해 모두 7회에 걸쳐 진행된 새해 정부업무보고는 기존과 달리 토론회에 가까운 분위기로 진행됐다고 한다. 사전 각본도 없었고, 예정 시간을 1시간 넘겨 끝내는 경우도 벌어졌다. 업무보고는 29일 교육ㆍ문화 혁신을 주제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대통령 또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아닌 총리가 업무보고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9일 당선된 후 각 부처별 보고를 받은 지 약 반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과, 정부가 공언한 책임총리제를 실현해야 한다는 점이 작용했다.

이 총리는 지난 18일 첫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대국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국민께 ‘책임 장관’의 면모를 내보이고 정부 혁신의 실감을 느끼시도록 해야겠다”며 “그를 위해 정책 수행에서 장관님들의 얼굴이 드러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이 총리는 이번 업무보고에서 입이 아닌 귀를 여는 데 중점을 뒀다. 각 업무보고 때마다 각 분야별 10명 가량의 민간 전문가를 참석시켰고, 이들이 적극적으로 자유 발언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민간 전문가들도 쓴소리를 감추지 않았고, 총리도 빠짐없이 답변했다”며 “정부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듣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24일 업무보고에서 발표한 '하얀 스케이트' 혁신 사례.

기획재정부가 지난 24일 업무보고에서 발표한 '하얀 스케이트' 혁신 사례.

각 부처별 개인기도 눈길을 끌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한 ‘하얀 스케이트’ 프레젠테이션이 대표적이다. 김 부총리는 1920년대 검은색 스케이트를 신던 관행을 깨고 흰 스케이트를 선택한 소냐 헤니 선수의 사례를 등장시켜 혁신을 강조했다.

이낙연 총리가 밀양 화재 참사 현장을 찾아 관계자들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이낙연 총리가 밀양 화재 참사 현장을 찾아 관계자들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그러나 업무보고에서 나온 약속이 불과 사흘 만에 공수표가 되는 일도 생겼다. 지난 23일 국민 안전과 재난ㆍ재해 대응을 주제로 열린 업무보고 사흘 뒤 경남 밀양 세종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업무보고에서 이 총리는 “국민의 안전과 안심을 지켜드리는 일은 국가의 기본적 의무”라고 했다. 이 총리는 지난 27일 밀양 화재 현장을 찾아 "죄인이 된 기분"이라면서 2월5일부터 3월말까지 전국 약 29만개 시설에 대해 '국민안전 대진단'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업무보고에 참석했던 한 부처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기존 업무보고보다 활기차게 토론이 진행되는 점은 신선했지만 말이 실행으로 이어지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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