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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명복 칼럼

단일팀에 화가 난 2030세대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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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배명복
배명복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한국 선수 최초로 메이저 테니스 대회 ‘4강 신화’를 쓴 정현(22) 선수가 그제 귀국했습니다. 인천공항 입국장에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렸습니다. 말 그대로 금의환향(錦衣還鄕)입니다. 때맞춰 문재인 대통령이 정 선수와 주고받은 글이 소셜미디어에서 화제입니다.

소모적 남북 분단 70년 #통일에 대한 생각 달라도 #자유왕래·평화공존은 #2030세대 미래 위해 필요 #단일팀 거부감 이해하지만 #크게 멀리 볼 필요도 있어

문 대통령은 “한국 스포츠에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국민에게 자부심과 기쁨을 준 정 선수가 너무나 장하고 자랑스럽다”는 내용의 축전을 보냈습니다. 정 선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축전을 공개하고, “보내 주신 응원이 큰 격려가 되었다”고 정중한 감사 인사를 남겼습니다. 그다음 말이 눈에 띕니다.

정 선수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말씀에 테니스 선수로서 깊이 공감한다”고 밝히고,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한다”고 썼습니다. 정 선수가 인용한 말은 문 대통령 취임사의 한 대목입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남북한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을 염두에 두고 정 선수가 그 말을 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도 단일팀 구성에 화가 나 있는 대한민국 20대의 일원입니다. 특히 “‘테니스 선수’로서 깊이 공감한다”는 대목에서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을 의식한 말일 수 있다는 추측을 해볼 뿐입니다.

20~30대는 문 대통령의 열성 지지층입니다. 그러나 단일팀 구성을 계기로 젊은 세대가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2030세대의 82%가 단일팀에 반대했습니다. 덩달아 문 대통령의 지지율도 내려가고 있습니다. 지난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취임 후 가장 낮은 64%를 기록했습니다. 2주 새 9%포인트가 빠졌습니다. 특히 20대의 지지율은 81%에서 68%로 급락했습니다.

배명복 칼럼 1/30

배명복 칼럼 1/30

인터넷에는 20대 네티즌들이 쓴 분노의 글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단일팀 구성은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한 20대 여성은 “한국 여자아이스하키 선수들의 상황이 꼭 내 처지 같다”며 “열심히 준비해 겨우 면접 기회를 얻었는데 ‘낙하산 응시생’과 같이 면접 보라는 꼴 아니냐”고 정부를 성토했습니다.

대한민국의 2030세대는 최고의 스펙을 자랑하는 세대입니다. 부모 세대인 우리 50~60대가 그렇게 키웠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최악의 취업난에 좌절하고 있습니다. 흙수저는 금수저를 이길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 있습니다. 낙하산 내리꽂듯 북한 선수들을 끼워넣어 단일팀을 만든 정부가 좋게 보일 리 없습니다. 할아버지·아버지 잘 만난 덕에 ‘핵수저’를 물려받은 김정은이 평창올림픽을 쥐고 흔드는 모양새도 달가울 리 없습니다.

5060세대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자랐습니다. 남북한은 언젠가 통일해 같이 살아야 할 한 민족이라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2030세대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는 걸 이해합니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여러분 세대와 통일 문제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하지 못한 우리 잘못도 있습니다.

지금 청와대와 정부의 주축은 5060세대입니다. 내가 옳다는 오만과 독선에 빠져 당사자인 여자아이스하키 선수들과 충분히 소통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것은 명백한 실책입니다. 워낙 급박하게 진행돼 그럴 시간이 없었다는 변명은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치적 목적에 젊은 선수들을 이용했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습니다.

한반도가 분단돼 남과 북에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선 지 올해로 70년입니다. 그 긴 세월 서로 반목하며 남과 북은 소모적 대결을 계속해 왔습니다. 지금도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평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통일은 먼 미래의 일로 치더라도 남과 북이 서로 오가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은 미래의 주인인 여러분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이 좁은 땅을 벗어나 저 멀리 만주 벌판과 시베리아, 유라시아로 뻗어나가 여러분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눈앞의 현실만 생각하지 말고 크게 멀리 보자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평창올림픽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단일팀 문제는 이미 활시위를 떠났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남북한 선수들은 머리와 몸을 맞대고 훈련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결과를 떠나 한마음으로 응원할 일이 남았습니다. 이제 논란을 접고 겨울 스포츠의 최대 제전, 평창올림픽을 즐길 시간입니다.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