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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함께 가즈아~’는 피라미드 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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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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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반짝이는 물체 하나가 별똥처럼 아프리카 들판 위로 뚝 떨어졌다. 길쭉한 물고기 모양의 이 물건은 살짝 땅에 박히며 온전히 착지했다. 그 광경을 목도한 부시족 한 명이 조심조심 다가갔다. 그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난생처음 본 이 물체를 나뭇가지로 조심스럽게 툭툭 두드려 봤다. 물거나 독을 쏘지 않았다. 신기한 물건을 ‘특템’한 그는 의기양양하게 마을로 갔다.

암호화폐 가치 확신하는 사람이라면 #거래가 폭락을 오히려 환영해야 정상

투명하고 단단한 이 물체는 쓸모가 많았다. 이삭을 털어 곡식 낟알을 거두거나 단단한 열매를 두드려 깨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양 끝의 동그란 부분은 문양을 그리는 데 쓰였다. 부족민들은 이 신통한 물건을 ‘신의 선물’로 여기며 생산·예술 활동에 두루 사용했다.

그런데 평화롭던 부족에 분란이 생겼다. 독점욕·소유욕이 발동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폭력 사태까지 발생했다. 서로 돕고 나누며 살던 마을이 욕심쟁이 소굴이 됐다. 최초 발견자는 결국 그 물체를 ‘악마의 유혹’이라고 규정하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에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1983년 개봉한 영화 ‘부시맨’은 그가 그 물건(경비행기 조종사가 창 밖으로 던진 코카콜라 병이었다)을 들고 세상의 끝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암호화폐, 어떤 이는 희망 없는 현실에서 행복한 미래로 자신을 구원해 줄 신의 동아줄이라고 한다. 다른 어떤 이는 지옥으로 떨구는 악마의 썩은 동아줄이라고 경고한다. 돈을 넣은 사람들은 천국의 희미한 빛과 지옥 불구덩이 열기 사이를 오가고 있다.

비트코인 한 개의 거래가가 머지않아 1억원까지 오를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거의 값어치가 없는 수준으로 폭락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도 있다. 전문가 행세하는 이들이 넘쳐나지만 각양각색, 천차만별의 예측 중 어느 것을 믿어야 할지 알기 어렵다. 결국은 도박이다. 꾸준히 올라야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락세 때 사서 상승세 때 팔면 된다. 이론적으론 그렇다.

그런데 최소한 누가 나를 벼랑 아래로 밀어버리려는 악인인지 구별할 방법은 있다. 그동안 살아온 이력으로 미뤄볼 때 엄청난 박애주의자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도 암호화폐의 세계로 함께 가자고 하는 사람, 불특정 다수에게 ‘가즈아∼’를 외치는 사람은 악마의 동업자일 가능성이 크다.

논리적으로 따져 보자. A라는 사람이 있다. 그가 블록체인 기술은 물론 암호화폐가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엄청난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가정하자. 그에게 가장 좋은 상황은 자신이 가진 돈으로 많은 양의 암호화폐를 살 수 있는 환경이다. 당장 가진 돈 이상으로는 살 수 없는 게 애석하므로 버는 족족 생계비 초과분은 이를 사는 데 써야 한다. A가 자신의 경제력 범위 안에서 최대한의 암호화폐를 보유하려면 거래가가 낮아야 한다. 거래가가 낮아지려면 다른 사람들이 이를 가급적 거들떠보지 않아야 한다. 암호화폐 중개소 사이트에 하락세를 의미하는 파란색 수치가 많이 보이면 값이 더 내려가라고 기도해야 한다. 대폭락 사태를 경고하는 사람에겐 조용히 빵이라도 보내줘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하게 돌아간다. 암호화폐의 장밋빛 미래를 말하는 이가 많다. 그들 중 상당수는 관련 업계에 지분이 있는 사람이다. 투자설명회를 여는 이도 있고, 자기는 큰돈을 벌었으니 당신도 망설이지 말라고 공공연하게 얘기하는 이도 있다. 노다지 캐러 같이 가자고 한다. 성인급 이타주의자이거나 머리가 매우 나쁜 사람이 아니라면, 암호화폐의 미래 가치가 아니라 후발 참여자 돈으로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려 하는 피라미드 사기의 공범으로 봐야 한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