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금조정 진통|"타사 인상 분보고 올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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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기업마다 임금교섭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근로자 측 주장과 사용자측이 제시하는 수준간에 격차가 너무 커 합의점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9일 현재 20대그룹 가운데 임금협상이 타결된 곳은 동부그룹계열 동부제강 1계사(8·8%인상에 합의)뿐이다.
작년에 34%가 인상돼 같은 업종의 타사에 비해 임금수준이 높은 편이어서 쉽게 합의를 본 케이스다.
주요 대기업들은 예년의 경우 대개 3월말에는 임금협상테이블을 마련,4월 중순께는 타결을 보고 그 결과에 따라 4월 봉급에 3월 인상 분까지 소급적용, 지급해 왔다.
그러나 올해의 사정은 예년과는 전혀 딴판이다. 교섭자체가 미뤄지고 있다.
주요 그룹 가운데 현재 노사협의가 진행중인 곳은 럭키금성·대우·한진·롯데·두산 등 삼성·선경·쌍룡·효성·기아산업·코오롱·한일합섬·삼미·금호 등은 이 달 중순께나 노사협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예년보다 보름 가량 늦어지는 셈이다.
예년 같으면 막바지 조정을 거치고 있을 임금협상이 올해는 탐색전 정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울산지역 계열사등 대부분이 9월1일부터 1년 시한으로 단체협약을 맺은 현대그룹은 5월 이후에나 계열사 별로 임금협상이 시작될 예정이다.
그나마 임금협상을 벌이고 있는 대우그룹의 경우 대우조선은 1차 협상이 결렬, 지난1일부터 파업에 들어가 있고 대우자동차도 합의에 실패, 지난달 26일 관계당국에 쟁의 신고를 낸 상태.
럭키금성그룹도 노·사 양측의 주장이 서로 달라 합의점에 도달하기까지는 난항을 거듭할 전망이다.
이 같은 임금협상 난항은 이미 연초부터 예상돼 온 일.
한국노총과 한국 경 총의 임금인상가이드라인의 격차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노총은 연초 일찌감치 올 임금교섭 가이드라인으로 전 산업 평균 29·3% 인상 선을 제시했다.
이에 반해 사용자측 단체인 경 총은 지난달 7일 평균 7·5∼8·5%의 임금인상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경 총은 올해 8%로 예상되는 실질 GNP성장률에 도매물가상승률을 2∼3%로 잡고 여기에서 2·5%의 취업자증가율을 뺀 8% 내외의 임금인상이 적정선 이라는 입장이다.
그뿐 아니라 개별기업의 근로자 측과 회사측의 주장도 아직까지 집약된 상태는 아니다.
현재 파업에 들어가 있는 대우조선의 경우 노조 측은 기능직사원의 기본급을 현행 ]만7천 원에서 55·3%인 12만원을 인상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회사측은 기본급 2만6천4백 원을 포함, 상여금·가족수당 등 12·2%오른 4만1천8백 원 인상안을 제시했었다.
대우자동차는 노조 측이 기본급을 26·2%(6만5천2백원) 인상해 줄 것을 요구한 반면 회사측은11·3%(2만8천 원)선을 내놓고 있다.
럭키금성그룹의 경우는 노조 측의 23%선과 회사측의 10%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기업마다 노·사 양측의 주장이 크게 엇갈리자 아직 임금교섭 개시전인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예년과는 다른 형태의 임금교섭을 벌일 방침이다.
지금까지는 그룹전체로 일률적인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던 것을 업종이 다른 계열사별로 독자적인 임금교섭을 하도록 바꾸었다. 계열사 사장들에게 회사경영실적 등을 감안, 노조 측과 협상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주요대기업들의 임금교섭이 지연되고 있는 까닭은 다른 회사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인사담당자들은 털어놓고 있다. 게다가 남보다 앞서 노사합의를 본 뒤라도 타사에서 임금인상문제 때문에 노사분규가 일어날 경우 그 여파로 추가인상이 불가피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겹쳐 교섭자체가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춘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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