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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명 구속영장 기각…권재진→MB '특활비' 의혹 수사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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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명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25일 기각됐다. 장 전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으로 권재진 전 법무부장관을 거쳐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사를 확대하겠다는 검찰의 계획엔 일단 제동이 걸렸다.

장 전 비서관은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2011년 장진수 전 총리실 주무관에게 관봉 5000만원을 건넸다는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장물운반)를 받고 있다.

장석명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불법자금 수수 및 '민간인 사찰 의혹 무마' 의혹에 대해 조사받기 위해 22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소환되고 있다. [연합뉴스]

장석명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불법자금 수수 및 '민간인 사찰 의혹 무마' 의혹에 대해 조사받기 위해 22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소환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 판사는 이날 “주요 혐의에 대한 소명의 정도, 피의자의 지위 및 역할, 증거인멸 가능성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 점, 피의자의 직업과 주거가 일정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장 전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검찰은 즉각 항의의 뜻을 내비쳤다. 검찰에 따르면 장 전 비서관은 입막음용 5000만원이 전달되는 과정에 개입한 청와대·총리실 관계자들과 사전에 말을 맞추며 사건 은폐를 시도했고 검찰 조사에서도 허위 진술로 일관해왔다고 한다. 특히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돈을 건넨 ‘최종 전달자’인 류충렬 전 총리실 관리관에게 수차례 연락해 돈의 출처에 대한 허위진술까지 종용했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본인 진술로도 내부고발자(장진수 전 주무관)에 대한 입막음용으로 5000만원을 전달한 사실이 명백히 확인되고, 허위진술을 종용하는 등 증거인멸 시도가 실제로 이뤄진데다 앞으로도 증거인멸 우려가 높으며, ‘직업이나 주거가 일정하다’는 점은 의미있는 기각 사유가 될 수 없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은 대단히 부당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앞서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의 특활비 수수 의혹을 수사하던 중 특활비 중 일부(5000만원)가 2011년 민간인 사찰을 은폐하기 위한 입막음용 자금으로 쓰인 정황을 포착해 관련 수사를 확대해 왔다. 장 전 비서관은 입막음용 자금 5000만원이 청와대에서 총리실로 넘어가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등 자금 전달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중요 피의자에 해당한다. 특히 장 전 비서관에 대한 소환조사와 구속영장 청구는 입막음용 돈 전달을 지시한 '최종 윗선'을 규명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수사 진행에 크나큰 장애물이 생긴 셈이다. 검찰은 일단 구속영장 기각에도 불구하고 윗선의 개입 여부를 밝히는데 수사력을 모은다는 계획이다.

검찰 안팎에선 권재진 전 법무부장관이 다음 타깃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권 전 장관은 입막음용 5000만원이 전달될 당시 청와대 민정실을 총괄하는 민정수석이자 김진모·장석명 전 비서관의 직속상관이었다.

지금까지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정황은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가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았고, 이 중 최소 5000만원이 민간인 사찰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로비 자금으로 활용됐다는 점이다. 검찰은 이 5000만원이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장석명 전 비서관→류충렬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장진수 전 주무관’ 순으로 전달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장석명 전 비서관의 상관인 권재진 전 법무부장관이 특활비 전달 과정에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중앙포토]

검찰은 장석명 전 비서관의 상관인 권재진 전 법무부장관이 특활비 전달 과정에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중앙포토]

검찰이 지난 23일 장 전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적용한 혐의는 ‘장물 운반’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 증거상 장 전 비서관의 역할은 5000만원을 류충렬 전 관리관에게 건네는 ‘중간 전달자’였을 것이란 판단이다. 이는 곧 돈 전달을 지시한 ‘윗선’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민간인 사찰 은폐 의혹과 관련 검찰은 지난 2주간의 수사를 통해 5000만원의 전달 경로를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지난 21일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5000만원을 건넨 '최종 전달자'인 류충렬 전 관리관을 소환해 자금 흐름과 관련한 내용을 집중 추궁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검찰은 5000만원 전달 과정에 개입한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입막음용 5000만원과 관련 '전달자'가 아닌 '지시자'를 규명하는데 수사력을 모을 방침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 윗선의 개입 여부를 규명하기 위해선 권재진 전 법무부장관과 임태희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 특히 권 전 장관의 경우 5000만원이 전달된 시점인 2011년 4월 김진모(구속) 전 비서관의 직속상관인 민정수석이었다. 검찰은 민정실의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에 있던 권 전 장관이 민간인 사찰 은폐와 관련한 내용을 직접 지시했거나 보고받았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중이다.

실제로 2010년 민간인 불법 사찰에 대한 대검찰청의 1차 수사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민간인 사찰에 대한 보고를 받아 온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민간인 사찰을 수행하고 관련 증거를 인멸해 온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하드디스크에서 ‘081001 민정수석 보고용(9월 30일 생성)’ 폴더에 들어 있는 ‘다음(동자꽃)’이라는 이름의 한글파일을 찾아냈다.

‘동자꽃’은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의 포털사이트 아이디(ID)다. 당시 하드디스크의 데이터가 전부 삭제돼 해당 파일은 이름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파일 제목이 ‘민정수석 보고용’이라는 점은 총리실 차원에서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사찰한 사실이 민정수석에게도 보고됐다는 점을 보여주는 정황증거 중 하나다.

임태희 전 실장도 민간인 사찰 및 은폐를 지시한 최종 윗선을 규명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으로 꼽힌다. 민정수석실 업무는 통상 ‘민정비서관→민정수석→비서실장→대통령’의 보고체계를 따른다. 특히 비서실장은 청와대 내의 정보를 총괄하는 자리라는 특성상 윗선의 개입 여부를 규명하기 위해선 임 전 실장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은 국정원 특활비 수수와 관련 26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받을 예정이다. 이 전 의원은 지난 24일 의식을 잃고 쓰러져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입원해 있는 상태지만 검찰 소환에는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전 의원 측은 "이상득 전 의원이 아직 병원에서 퇴원을 못하고 있지만 반드시 내일 검찰 출석해 조사를 받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국회의원으로 재직 중이던 2011년 국정원으로부터 1억원대의 특활비를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돈이 청와대를 거치지 않고 직접 이 전 의원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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