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이번엔 스웨덴과 외교갈등..스웨덴 국적 홍콩 출판업자 연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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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나 지도층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출판물을 펴내오던 스웨덴 국적의 홍콩 출판업자가 중국 공안당국에 연행됐다.
 예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지만 이번엔 스웨덴 정부가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섬으로써 외교 문제로 비화중이다.

 마르고트 발스트룀 스웨덴 외무장관은 23일(현지시간) 중국 사복경찰이 스웨덴 국적 홍콩 출판업자 구이민하이(桂敏海)를 연행한 것과 관련해 항의 성명을 내고 즉각 석방을 요구했다. 유럽연합(EU)도 24일 비슷한 내용의 성명을 냈다. 반면 중국은 국내법에 의한 적법 조치란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2015년 중국 당국에 연행된 스웨덴 국적의 홍콩 출판업자 구이민하이의 사진 앞에서 동료 출판인이 항의 시위를 하는 장면. [홍콩 AP=연합뉴스]

2015년 중국 당국에 연행된 스웨덴 국적의 홍콩 출판업자 구이민하이의 사진 앞에서 동료 출판인이 항의 시위를 하는 장면. [홍콩 AP=연합뉴스]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 21일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시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일어났다. 중국 사복 경찰 10여명이 구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으며 이후 그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것이다. 구이는 당시 스웨덴 외교관 2명과 함께 열차를 타고 있었다.

 중국 혈통인 구이는 원래 홍콩에 거주하며 출판업에 종사했다. 그는 주로 중국 고위 지도자들의 권력투쟁 등을 다룬 서적을 펴내고 유통시켰다. 구이는 2015년 10월에도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출판업자 4명과 함께 중국 당국에 연행된 적이 있다. 국제사회에서 출판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란 비판이 일었던 ‘코즈웨이베이 서점’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홍콩에선 반중(反中) 시위가 여러 차례 일어나기도 했다.

2017년 6월 홍콩 도심의 가판대에서 중국 정부와 지도층에 대한 비판 내용이 담긴 서적들을 살펴보는 중국인 관광객.[홍콩=예영준 특파원]

2017년 6월 홍콩 도심의 가판대에서 중국 정부와 지도층에 대한 비판 내용이 담긴 서적들을 살펴보는 중국인 관광객.[홍콩=예영준 특파원]

당시 수개월 동안 구금 조사를 받고 수감됐던 이듬해 1월 중국 관영TV에 나와 "2003년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어죽인 죄를 자백하기 위해 중국으로 와 자수했다"고 밝힌 뒤 석방됐다. 구이의 석방에는 모친이 살고 있는 닝보로 거주지를 제한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가 이 달 다시 연행됐다는 소식은 딸이 SCMP에 제보함으로써 알려졌다. 구이의 한 지인은 구이가 베이징 주재 스웨덴 대사관에서 새 여권을 발급받아 중국을 떠나려 했다고 전했다. 루게릭병이라 불리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을 치료받기 위해 해외로 나가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구이가 거주 제한 조건을 어긴 것을 문제삼아 그를 연행한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 정부는 자국 주재 중국 대사를 초치해 항의하고 외무장관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발스트룀 장관은 23일(현지 시간) 성명에서 “스웨덴은 구이민하이 연행 사건을 아주 심각하게 지켜보고 있다”며 “중국 당국은 우리 시민을 즉각 석방하고 스웨덴 외교관과 의료진을 면담할 기회를 부여하기를 원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내외신 브리핑에서 “중국은 국제법과 국내법에 따라 주중 외국대사관과 영사관에 대해 책임을 이행하고 있다”며 “주중 대사관과 영사관 직원을 포함한 어떠한 외국인도 국제법과 중국법을 위반해서는 안 되며 이는 기본 상식”이라고 반박했다. 구이가 중국 국내법을 어긴 것은 물론, 그의 여행에 동행한 스웨덴 외교관도 중국 법을 위반했다는 뜻이 담긴 발언이다. 반면 스웨덴 정부는 자국 국민에 대한 영사 보호를 위해 외교관이 동행한 것은 비엔나 협약에 보장된 합법적 권한이란 입장이다.

구이를 비롯한 홍콩 출판업자들이 발행하는 중국 지도층 관련 출판물은 중국 당국의 골치거리 중 하나다. 대외적으로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중국 내부의 권력투쟁이나 중국 지도층의 사생활에 관련된 비화(秘話)등이 단행본이나 잡지 등의 형태로 출판되고 있기 때문이다.

법률적으로 중국 대륙 내부로의 반입은 금지되지만 불법 통신 판매나 관광객을 통한 반입을 완전 차단하기는 힘들다. 2015년 중국 당국이 구이를 포함한 다섯명의 출판업자를 동시에 연행한 것도 홍콩의 일부 출판업자들에게 타격을 주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당시 경영진이 연행됐던 홍콩의 코즈웨이베이 서점은 지금도 무기한 휴업 상태에 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경영진이 중국 당국에 연행된 이후 2015년부터 줄곧 휴점 상태에 있는 홍콩 출판사겸 서적 판매상인 코즈웨이베이 서점 입구 [홍콩=예영준 특파원]

경영진이 중국 당국에 연행된 이후 2015년부터 줄곧 휴점 상태에 있는 홍콩 출판사겸 서적 판매상인 코즈웨이베이 서점 입구 [홍콩=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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