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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노원구, 인구는 똑같은데 지하철역은 27 vs 1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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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강남 집값의 역설 <하> 편의시설 경쟁력 

“강남은 지하철이 워낙 촘촘해 어디로든 이동하기 편해요. 버스 노선도 다른 지역보다 많으니 걸을 일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공공 인프라 강남 쏠림 #환승역·버스터미널·고속철·공원 … #‘강남 집값 잡겠다’면서 인프라 집중 #공공사업 진척 더딘 강북과 대비 #주민 “살다보면 떠나고 싶지 않아”

서울 도곡동에 사는 주부 홍모(35)씨가 ‘강남살이’에 가장 만족하는 건 편리한 교통이다. 집에서 4분 거리에 지하철 3호선 매봉역이 있다. 홍씨는 23일 “직장에 갈 때는 지하철을 이용해 힘들 일이 없다”며 “지방에 내려갈 때도 3호선 고속터미널·수서역으로 가서 버스나 고속철을 타면 그만이다”고 말했다.

‘생활 쾌적성’을 높여주는 대형 공원도 많다. 방이동 올림픽공원(144만여㎡), 양재시민의숲(25만㎡) 등이 대표적이다. 올림픽공원에서 만난 주부 장모(60·방이동)씨는 21일 “이곳에 사는 이유는 집 주변에 이런 대형 공원이 있어선데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잠실 롯데타워가 있어 쇼핑하기도 좋다”며 “쾌적한 주거 지역의 집값이 비싼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 한복판인 지하철 2호선 삼성역과 9호선 봉은사역 사이에 광화문광장 2.5배 규모의 공원이 생기고 지하에는 철도 노선 5개가 지나가는 복합환승센터가 들어선다. [연합뉴스]

서울 강남 한복판인 지하철 2호선 삼성역과 9호선 봉은사역 사이에 광화문광장 2.5배 규모의 공원이 생기고 지하에는 철도 노선 5개가 지나가는 복합환승센터가 들어선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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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높은 집값이 유지되는 비결 중 첫손에 꼽히는 것은 지하철·공원 같은 공공 인프라다. 강남 집값을 잡겠다고 엄포를 놓는 정부지만 생활 편의를 보장하는 공공 인프라는 강남에 몰려 있다. 이런 차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가령 인구수가 거의 엇비슷한 강남구(인구 56만5000여 명)는 노원구(56만2000여 명)에 비해 지하철역이 2배 이상 많다. 교통 요충지이자 상권이 발달하는 환승역도 4곳 대 6곳으로 강남구가 많다. 현재 공사 중인 신분당선 연장선이 3호선 신사역까지 이어지면 환승역 3곳(신논현·논현·신사)이 더 늘어날 예정이다.

개통 1년여가 지난 수서고속철(SRT)은 강남의 잘 갖춰진 교통 인프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종전까지 고속철을 이용해 지방에 가려면 서울역이나 용산역, 청량리역까지 나와야 했던 수고가 사라졌다. 실제로 수서고속철 누적 이용객 수는 2142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5만2900명에 달한다. SR 홍보실 관계자는 “수서고속철 회원 가입자 현황을 살펴보면 전국 시·군·구에서 강남·서초·송파구의 회원 가입자 수가 가장 많다. 그만큼 강남 지역민들이 고속철 이용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21일 수서역에서 만난 주민들도 이런 교통 편의가 거주 여건을 업그레이드했으며 집값 방어에 큰 역할을 한다고 언급했다. 반포동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황순렬(68·여)씨는 “집에서 9호선을 타면 김포공항까지 30여 분, 고속터미널은 걸어서 갈 거리”라며 “교통의 최고 요지고 교육 인프라까지 갖췄으니 젊은 부부들이 강남에서 안 나가려 한다. 집값이 뛰는 이유”라고 말했다. 3호선 일원역 근처에 사는 방선정(24·여)씨도 “강남역이든, 학교(한양대)든, 분당이든 다 가기 좋다. 고속철까지 생겨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개발계획을 환영하는 플래카드. [녹색당]

개발계획을 환영하는 플래카드. [녹색당]

지금도 공공 인프라가 국내 최고·최대 규모인데 정부 주도의 공공 인프라 건설사업은 여전히 강남에 집중되고 있다. 진행 중인 사업이 끝나면 안 그래도 비싼 강남 집값이 또 한 번 들썩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2호선 삼성역이 있는 영동대로 일대 지하에는 2023년 5개 광역·지하철도 역사와 버스환승정류장, 공공·상업시설 등을 갖춘 광역복합환승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주변엔 현대자동차그룹 GBC(글로벌비즈니스센터) 건립과 잠실종합운동장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 지역발전본부 관계자는 “삼성동 일대가 새로운 교통의 허브이자 서울 동남 지역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 이외 지역에서 이처럼 가시화된 인프라 사업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착공 예정이었던 도봉구의 대중문화공연장인 ‘K팝 아레나’(2만 석 규모, 면적 5만㎡)는 아직 첫 삽을 뜨지 못했고, 창동차량기지(18만㎡)를 남양주로 이전하고 ‘세대융합형 창업복합시설’이 들어오는 사업도 속도가 더딘 상태다. 또 은평구의 경의·중앙선 수색역 일대 사업은 아직 기본계획마저 세우지 못한 상태다.

이에 대해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아무래도 입지적인 장점 때문에 강남 지역 사업이 가장 빠른 게 진행된다”며 “현대차그룹에서 공공기여금 1조7000억원을 내는 등 민간투자자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보니 다른 지역의 사업 속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강남은 이미 하나의 ‘도시 브랜드’가 됐다. 강남이 계속 발전하는 이유는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결정짓는 교통·문화(트렌드 발신지)·기업(일자리)·교육이란 4가지 요소가 견고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사람은 누구나 편의와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다”며 “이런 요소를 보고 지방에서도 사람들이 몰리고 다시 공공 인프라가 발달하는 구조로 가면서 ‘프리미엄 시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한대·오원석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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