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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믿을 실거래가 … 계약 취소돼도 자료 삭제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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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부동산 실거래

부동산 실거래

서울 강남 A아파트 전용면적 84㎡는 지난해 중순 19억~20억원에 거래됐다. 그런데 같은 해 10월에는 층수도 큰 차이가 없는데 24억원에 실거래가 신고가 됐다. 11~12월 거래된 세 건의 실거래 가격 차이는 비슷한 층수인데도 3억원 넘게 났다.

빈틈 많은 부동산 통계 시스템 #지난해 허위신고 의심 2만2000건 #다운계약뿐 아니라 업계약도 증가 #허수거래 통한 시세 조작 가능해 #계약 무효될 경우 통보 의무화 #신고 기간 60 → 30일로 단축해야

B아파트 82㎡ 고층은 지난해 9월 14억~15억원에 거래됐다. 하지만 다음 달에는 저층임에도 17억원에 계약했다는 실거래가 신고가 들어왔다. 인근 C아파트도 비슷했다. 11월 19억5000만~21억원에 거래된 94㎡가 12월 23억원에 신고됐다.

정부 부동산거래조사팀이 실거래가 허위 신고 의심 사례로 들여다보는 곳이다. 조사팀은 이달부터 무기한으로 실거래가 허위 신고 의심 사례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팀 관계자는 “지난해 10, 11월 중에 평균 시세보다 실거래가가 높게 신고된 곳을 집중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감정평가법인 관계자는 “비슷한 기간의 평균 시세와 10% 이상 차이가 나면 이상 가격으로 본다”고 말했다. 부동산 거래를 하면 계약 체결일부터 60일 이내에 관할 시·군·구에 실거래 가격을 신고해야 한다. 신고하면 바로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등재된다.

문제는 신고를 허위로 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부동산거래조사팀이 지난해 8·2 대책 이후 실거래가 허위 신고로 의심해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한 것만 2만2000건이 넘는다. 특이한 점은 탈세를 노린 ‘다운 계약(실거래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신고)’이 많지만, 가격을 올려 신고하는 ‘업 계약’도 매년 200~300건씩 적발된다는 것이다.

실거래가를 올려 신고하면 취득세를 더 내야 하는 등 부담이 커진다. 그런데도 실거래가를 허위로 신고한다는 의심을 사는 이유는 뭘까.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 실거래 가격이 올라가면 그 동네 주변 시세가 덩달아 올라간다. 실거래가를 허위로 신고해 시장 가격을 조작할 수 있다는 자전거래(실제 혼자 한 것인데 쌍방 거래가 일어난 것처럼 꾸미는 것) 의혹의 배경에 누적 방문자 수가 9200만 명이 넘는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이 있는 셈이다.

부동산 가격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운영하는 제도가 되레 시장을 불투명하게 하는 도구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특히 계약이 취소됐을 때가 문제다. ‘부동산 거래 신고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부동산 거래 계약이 무효·취소 또는 해제된 경우 신고서를 관청에 제출할 수 있다’고만 돼 있다. 무효·취소·해제 신고서 제출이 의무가 아니다. 신고를 하면 계약 당시 신고한 실거래가는 공개시스템에서 자동 삭제되지만 안 하면 계속 남는다.

의도적으로 비싼 가격으로 실거래가 신고를 한 뒤 계약을 취소하는 수법이다. 이렇게 취소된 거래가 해당 단지의 호가·시세를 올리는 역할을 했을 공산이 크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전문위원은 “한두 건의 거래로 시장 시세가 결정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개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대법원 등기정보시스템과 연계해 실거래가 신고 후 등기 이전이 되지 않은 매매 계약 건을 공개할 필요도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실태 점검 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주택 계약 해지 신고를 의무화하는 법률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실거래가 신고 기간을 계약 체결 후 30일 이내로 단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매매가가 시세보다 높거나 낮게 계약될 경우 거래가 줄 것을 우려해 공인중개사들이 최대한 늦게 실거래가를 신고하면서 시세가 정확히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실거래 신고 기간이 계약 체결 후 60일 이내이기 때문에 실제 시세를 파악하기 어렵고 가격이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소유권 등기 이전이 완료된 거래만 실거래 시스템에 반영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전문위원은 “등기 이전이 된 계약만 실거래로 반영하면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자계약을 활성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부동산 전자계약은 종이 대신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부동산 거래 전자계약시스템’을 통해 계약서를 작성하고 전자서명을 하는 방식이다. 전자계약을 활용하면 실거래가 신고가 자동 처리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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