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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평화올림픽 vs 평양올림픽…포털서 벌어진 실검 전쟁 유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의 생일인 24일 네이버에선 실시간 검색어 전쟁이 벌어졌다. [온라인 캡처]

문재인 대통령의 생일인 24일 네이버에선 실시간 검색어 전쟁이 벌어졌다. [온라인 캡처]

문재인 대통령의 66번째 생일이자 취임 후 첫 생일인 24일 오전. 네이버와 다음 등 주요 포털사이트에서는 ‘평화올림픽’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스스로 ‘문파(文派)’ 또는 ‘문팬’으로 칭하는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만들자”고 힘을 모은 결과였다. 같은 시간 네이버에선 ‘평양올림픽’이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 언저리를 오르내렸다. 문파와 문팬을 이른바 ‘문빠’라고 부르는 반대 진영에서 “평화올림픽에 1위를 내줄 수 없다. 평양올림픽을 1위로 만들자”고 해서 나타난 결과였다. 이날 오전 내내 양측의 지지자가 모인 웹사이트와 카페 등에선 “화력이 부족하다. 2위로 밀렸다”는 글이 넘쳐났고 ‘평화올림픽’과 ‘평양올림픽’의 실검 순위는 엎치락뒤치락 했다.

이처럼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을 불과 보름 앞두고 주최국 대한민국은 두 갈래로 갈렸다. 북한이 대규모 예술단과 응원단을 보내고,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만드는 걸 놓고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평화올림픽을 위한 노력”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자유한국당은 “평창올림픽이 아니라 평양올림픽”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삼수 끝에 어렵게 따낸 올림픽이고, 2002년 한ㆍ일 월드컵 이후 16년 만에 우리 땅에서 열리는 지구촌의 축제이지만 막상 손님을 맞을 준비보다는 집안 싸움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생일(1월 24일) 을 맞아 ‘평화올림픽’ 검색어를 네이버와 다음에서 실시간 검색어 상위 순위에 올려놓자고 독려하는 문 대통령 지지자의 글 [트위터 캡처]

문재인 대통령의 생일(1월 24일) 을 맞아 ‘평화올림픽’ 검색어를 네이버와 다음에서 실시간 검색어 상위 순위에 올려놓자고 독려하는 문 대통령 지지자의 글 [트위터 캡처]

씁쓸한 건 그러한 논쟁이 벌어지는 곳이 네이버라는 거대 포털이라는 점이다. 정치권에선 최근 여야 모두 네이버가 제공하는 기사 댓글 서비스에 대해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상대방 지지자들이 의도를 갖고 공격한 댓글이 ‘베스트 댓글’을 차지하고, 정치인에 대한 욕설, 허위사실 유포 등이 난무하는 걸 지켜보면서 문제점을 강하게 지적하고 있다. 정치인 뿐이 아니다. 그들을 따르는 지지자들도 네이버를 ‘공정한 여론이 유통되는 매개체’로 여기지 않고 “네이버를 수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급기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7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네이버 댓글은 인신공격과 욕설, 비하와 혐오의 난장판이 돼버렸다. 방조하는 포털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공개 비판에 나섰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글로벌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의 간부는 최근 “소셜미디어가 최악에는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민주주의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소셜미디어 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민주주의의 순작용 뿐 아니라 역기능도 할 수 있다는 ‘자기 반성’이었다.

반면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에 더해 다양한 댓글 서비스를 통해 시장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는 네이버는 눈에 띄는 자구 노력이 없는 상황이다. 사실상 언론의 기능을 하고 있지만 언론으로서의 공적 책임은 거의 없는 네이버를 향해 “포털 공룡이 됐다”는 비판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그런 네이버가 하는 대응은 집권 여당의 대표가 공개 비판한 지 이틀 만에 스스로 댓글 조작 의혹을 경찰에 수사 의뢰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건 ‘평화올림픽’과 ‘평양올림픽’의 실검 전쟁에서 여론 조작의 중심에 열성 지지자 또는 열성 반대자가 있다는 걸 봤다는 점이다.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는 네이버의 실검 순위가 얼마든지 특정 집단의 의도대로 바뀔 수 있다는 걸 이번 실검 대결이 증명해냈기 때문이다. ‘공룡 포털’을 서로가 비판하고 있지만 결국 그 품안에서 보여진 건 우리 정치 문화의 민낯이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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