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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옥의 금융 산책]좋은 시절은 끝?… ‘중앙은행 특수’ 사라지며 기로에 선 채권 시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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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지난 9일 미국 뉴욕의 증권거래소 앞을 지나가고 있는 트레이더의 모습. [뉴욕 AP=연합뉴스]

사진은 지난 9일 미국 뉴욕의 증권거래소 앞을 지나가고 있는 트레이더의 모습. [뉴욕 AP=연합뉴스]

 ‘중앙은행 특수’를 누리던 채권 시장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금리가 오르며(채권값 하락) 채권 시장이 약세로 돌아설 수 있다는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미 10년물 국채금리 2.61% 기록 #3년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 #세계경기 회복ㆍ물가 꿈틀대고 #채권시장 ‘큰 손’ 각국 중앙은행 #통화정책 정상화로 방향 틀며 #약세장으로 전환될까 긴장 고조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곳은 미국 채권 시장이다. 장기 금리의 벤치마크로 여겨지는 미국 10년 국채 금리가 올해 들어 급등하며 시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23일(현지시간)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2.61%를 기록했다.

 전날에는 2.63%를 넘으며 최근 3년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상승했다.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2.65%에 근접하며 시장의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핌코 창업자로 채권 시장의 거물인 빌 그로스 야누스 핸더슨 대표가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이 2.5%를 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채권시장 약세장(베어 마켓)을 선언할 정도다.

빌 그로스 야뉴스 핸더슨 대표. [캘리포니아 로이터=연합뉴스]

빌 그로스 야뉴스 핸더슨 대표. [캘리포니아 로이터=연합뉴스]

 채권 시장은 지난 30년간 호황을 누려왔다. 지난 30년간 채권 수익률이 지속적으로 하락(채권값 상승)하며 채권 시장은 강세장을 이어왔다.

 세계금융위기는 채권 시장에 내린 축복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수렁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전 세계 중앙은행은 700여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제로 금리까지 도입하고도 효과를 얻지 못하자 중앙은행은 양적 완화(QE)라는 극약 처방을 썼다. 대규모 채권매입을 통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2009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필두로 일본은행(BOJ)과 유럽중앙은행(ECB)이 잇따라 양적 완화의 배에 올라탔다.

 중앙은행이라는 ‘큰 손’이 등장하며 채권 시장은 초과 수요로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씨티은행에 따르면 중앙은행이 2011~2016년 연평균 채권 매입액은 1조2500억 달러보다 많았다. 지난해 각국 중앙은행이 사들인 채권은 1조5000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

 하지만 채권 시절의 좋은 시절은 저물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장기 금리는 경기와 물가에 따라 결정된다.

 세계 경제는 순항 중이다. 세계은행은 지난 9일 발표한 ‘2018년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경제가 3.7%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 6월의 예상치보다 0.2%포인트 올라간 수치다

 물가도 꿈틀대고 있다. 올해 미국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Fed의 목표치(2%)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중앙은행발 유동성 잔치가 끝을 향해 가면서 채권 시장의 분위기는 바뀌는 듯한 모습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정책 정상화로 거함의 기수를 틀면서 양적긴축(QT) 행렬에 합류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중앙포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중앙포토]

 Fed는 지난해 10월부터 매달 최대 100억 달러의 보유자산을 축소하고 있다. 3개월마다 축소 규모를 늘리고 있다. ECB도 월 600억 유로였던 자산매입 규모를 1월부터 300억 유로로 줄였다.

 일본은행도 국채 매입 규모를 줄여가고 있다. 채권 시장의 큰손이 시장에서 발을 빼는 형국이다. ‘대 긴축(Great Tapering)’으로의 전환이라고 불릴 정도다.

 FT는 “초(超) 완화적 통화정책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며 “주요국 중앙은행이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손을 떼면서 50조 달러 규모의 세계 채권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인플레이션 기대감에 미국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에 대한 재평가 이뤄지고, Fed와 ECB,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변경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는 만큼 연내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3%를 돌파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채권 시장이 기로에 섰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미국은 출렁대고 있지만 국내 채권 시장의 경우 지난해 6월 이후 국고채 3년물 금리의 저점이 더 낮아지지 않으면서 이미 채권 시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채권 시장의 약세를 전망하기에는 아직 섣부르다는 목소리도 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분위기가 바뀌며 채권의 메리트가 떨어진 것은 맞지만 경제 성장세 등을 감안할 때 중앙은행이 긴축으로 서둘러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라며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3%대에 진입하는 것에 대해 시장이 큰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 강세장의 종말론은 지난해에도 불거졌다. 지난해 3월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2.6%대까지 치솟은 뒤 채권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잇따랐지만 주요국 중앙은행이 긴축으로 방향을 트는 속도가 늦춰지며 지난해 글로벌 채권 시장의 수익률은 10년 만에 가장 높았다.

 채권의 인기가 급격하게 식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안전 자산으로 여겨지는 채권에 대한 선호도가 꾸준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술 발전과 유통 혁명 등으로 인해 디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는 것도 채권이 매력을 유지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그레고리 피터스 PGIM채권 선임 매니저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시장이 과잉반응을 하고 있을 뿐 채권 강세장은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며 당분간 시장의 출렁임은 이어질 수 있다. 공동락 연구원은 “시장이 그동안 싼값의 돈에 길들여진 탓에 펀더멘탈과 무관하게 작은 변화에도 소규모의 긴축 발작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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