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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사고 나면 사업주 무조건 징역형…하청근로자에 공사중지 요청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앞으로 산업현장에서 위험상황이 감지되면 하청근로자가 발주처에 직접 공사 중지를 요청할 수 있다. 산업재해로 사망사고가 나면 무조건 징역형으로 처벌한다. 도금이나 제련, 가열, 유해 화학물질 취급과 같은 위험한 작업은 도급 자체를 금지한다. 하청 근로자에게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원청 사업주도 하청 사업주와 동일하게 처벌한다. 보호구 착용과 같은 안전수칙을 두 차례 이상 위반한 근로자는 곧바로 현장에서 퇴출된다. 안전관리가 부실한 건설사업주에겐 신규 자금 대출이나 선분양 제한과 같은 제재가 가해진다.

안전 조치 두 번 이상 위반한 근로자 바로 퇴출 #…마음에 안 드는 근로자 제재 수단으로 변질 우려 #무조건 징역형은 다른 법과 형평성 논란 불러 #도급 아예 금지는 전문 강소기업 육성 저해할 수도 #원청이 안전 이유로 지휘·감독하면 불법파견 논란 #공사중지 요청권 악용되면 고의 공사지연 우려 #조선업 안전보건관리비 제도는 선진국엔 없어

그러나 이런 대책은 헌법이나 파견법과 같은 다른 법과 충돌이 생겨 논란이 일 전망이다. 과잉 대응·처벌 논란과 전문 산업 위축도 우려된다.

정부가 이런 내용의 '산업재해 사망사고 감소대책'을 23일 내놨다. 이날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는 "현재 근로자 1만명당 0.53명인 사고사망만인율을 2020년까지 0.27명으로 절반가량 감축하겠다"고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보고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만명당 0.3명)보다 낮은 수준이다.

산재로 인한 사망율이 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OECD 평균보다 높다.

산재로 인한 사망율이 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OECD 평균보다 높다.

정부는 하청 근로자가 위험 상황을 감지하면 공공 발주처에 직접 신고하는 '위험작업 일지 중지 요청제도(Safty Call)'를 모든 공공기관에 적용하기로 했다. 민간으로 확산도 유도한다. 산업재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문제는 노조가 개입해 고의로 공사를 지연하는 또 다른 쟁의행위로 변질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지금도 노조가 강력한 힘을 가진 일부 사업장에선 안전을 이유로 생산라인을 무단 정지시키며 요구사항을 관철하려 드는 등 폐해가 심각하다"며 "위험요인 제거는 필요하지만 쟁의행위적 요소를 제어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발주처에 직접 신고하도록 하는 것은 자율개선 원칙을 무시하는 처사인 데다 원·하청 간의 신뢰를 깨는 조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산재 사망 많아

구분
(2016년)

전체

5인미만

5~49인

50~99

100~299

300인 이상

사망자 수(명)

969

301

404

95

97

72

사고사망만인율(‱)

0.53

1.10

0.51

0.50

0.39

0.22

 자료:고용노동부

유해 화학물질을 다루거나 제련, 도금과 같은 위험작업은 도급을 아예 금지한다. 이런 작업을 하려면 회사가 관련 직원을 채용해 직접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조치는 관련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기술 강소기업의 육성을 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관련 산업 종사자의 고용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이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경영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또 유해작업으로 분류해 획일적으로 하도급을 금지하는 것은 계약체결의 자유 원칙에 배치된다.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하면 원청도 하청 사업주와 동일하게 처벌(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한다. 그러나 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지휘·감독권이 없는 상황에서 파견법과 충돌이 불가피하다. 자칫하면 안전을 이유로 하청 근로자를 대상으로 지휘·감독을 할 경우 불법파견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파견법 등 관련 법의 정비가 뒤따라야 하는 까닭이다.

사망사고가 나면 무조건 징역형을 선고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통상 '몇 년 이하 징역'이라는 처벌조항 대신 '몇 년 이상 징역'이라는 조항을 만드는 방식(하한설정 징역형)이다. 형법의 업무상 과실치상죄(5년 이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와 비교할 때 형벌 수준이 지나치게 높아 과잉처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근로자가 안전모 착용과 같은 안전조치를 위반하면 처음엔 경고로 끝나지만 두 차례 이상 계속되면 즉시 퇴거 조치된다. 그러나 사업주가 마음에 안 드는 근로자를 현장에서 퇴출하는 방안으로 악용할 소지도 있어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안전관리가 부실한 건설 사업주는 주택기금 신규대출이 제한되고, 자금 조달을 위한 선분양도 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안전관리를 잘못하면 경영상 상당한 어려움이 불가피하다.

조선업에는 원청이 안전보건관리비를 계상하도록 의무화할 방침이다. 하청을 줄 때 안전보건비를 따로 계산해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다. 협력업체가 안전관리를 위해 적정한 비용을 확보할 수 있게 도움을 주려는 취지다.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 어느 국가도 조선업에 안전보건관리비 제도를 적용하는 곳이 없다. 건설업과 달리 조선업은 안전보건관리비 계상 자체가 곤란한 경우가 많아서다. 제도가 도입되면 이를 둘러싼 갈등과 혼란이 일 수 있다.

검사를 받지 않은 건설기계나 불합격 장비를 사용하면 과태료 폭탄이 떨어진다. 지금은 1차 적발 시 50만원의 과태료가 매겨지고,  2차 100만원, 3차 200만원이 부과된다. 앞으로는 1차 적발 시 500만원으로 대폭 상향 조정된다. 2차 700만원, 3차 1000만원의 과태료가 매겨진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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