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감독의 '휴먼 야구' 미국 꺾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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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전 4회말 2사 1, 2루에서 대타로 출전해 3점 홈런을 친 최희섭(11번)이 더그아웃에서 김인식 감독(오른쪽에서 둘째)을 비롯한 동료들과 환호하고 있다. 경기가 벌어진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의 에인절 스타디움은 한국 동포가 가장 많이 사는 로스앤젤레스 오렌지카 운티에 있으며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 팀의 홈 구장이다. 애너하임(미국 캘리포니아주)=이호형 일간스포츠 기자

2002년 한국에 거스 히딩크가 있었다면 2006년에는 김인식이 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2라운드에서 14일(한국시간) 야구 종주국 미국을 7-3으로 꺾어 미국을 침묵에 빠지게 한 한국 야구는 이변과 돌풍을 넘어 이제 '경악'의 대상이 됐다. 현지 야구 관계자마다 "한국 야구가 이처럼 강한지 몰랐다"고 말한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 4강 돌풍을 일으켰던 박종환 사단,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히딩크 감독의 축구대표팀에 이어 한국 야구가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코리안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그 한가운데 김인식(59) 감독이 있다. 그의 야구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중히 여기는 '휴먼 베이스볼'이다. 다시 말해 인화(人和)의 야구다.

김인식 감독은 아시아지역 1라운드(3월 3~5일)에서 일본의 오 사다하루(王貞治) 감독이 야구의 작은 부분을 중시하는 '스몰 볼(small ball)'을 표방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정해놓고 하는 야구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고, 상대에 따라 다르다. 야구는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작전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부분이 바로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 어떤 사람을 쓰느냐가 내 야구의 기본이다."

김인식 감독의 야구는 이번 WBC에서 고유의 색깔을 유감없이 드러냈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떨어졌다. 투수 교체와 대타 기용에서 마치 상대의 대응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완벽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의 개성을 존중했다. 강압과 규제로 선수단을 통제하지 않고, 스스로 절제하고 운동하도록 했다. 그는 대표팀이 처음 소집됐을 때 돌출 행동에 의한 팀워크 균열을 우려하는 주변의 목소리에 대해 "여기 모인 선수들은 모두 프로다. 자신들이 알아서 관리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너무 지나친 행동만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한다"고 했다.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것보다 스스로 느껴서 책을 집어들도록 하는 게 효과가 크다는 논리다.

투수 출신인 김 감독은 투수 기용과 교체 타이밍에서도 완벽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선발로만 뛰었던 박찬호(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1라운드 대만전부터 마무리로 기용, 투수진의 든든한 수호신으로 자리 잡게 했다. 박찬호는 일본전과 멕시코전에서 1점 차의 리드를 안고 마운드에 올라 모두 승리를 지켜냈다. 그때 김 감독은 "공의 구위로 볼 때 마무리는 오승환(삼성)이 있지만 긴박한 순간에서의 경기 운영은 경험이 풍부한 박찬호에게 맡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야구는 사람이 한다'는 그의 원칙이 제대로 적중한 대목이다.

김 감독의 투수 교체는 한 박자 빠르다. '예방은 치료보다 낫다'는 철학에서 그의 투수 운용이 출발한다. 한국의 구원투수진은 언제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마운드에 올랐고, 정확히 자신의 몫을 수행했다. 이런 성공은 그 투수의 특성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데서 비롯됐다. 승부사 기질도 빠뜨릴 수 없다. 14일 미국전에서 2라운드 무안타에 허덕이던 최희섭(LA 다저스)을 4회 말 대타로 기용, 3점 홈런을 이끌어낸 대목은 절정이었다.

"조직은 사람이 만들고, 운영은 사람을 다루는 데서 출발한다. 야구도 경영이다. 엔트리 30명은 모두 장점이 있다. 그 장점을 살려주는 것이 책임자가 할 일"이라는 김인식의 휴먼 베이스볼. 그 야구가 한국팀을 세계 정상급으로 끌어올렸다.

애너하임=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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