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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국 칼럼

이명박과 노무현, 무엇이 다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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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꼭 1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비장했다. 유시민이 정리한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는 당시 분위기를 자세히 전한다. 2007년 12월 28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청와대를 방문해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 하나만큼은 전통을 확실히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김해 봉하마을로 내려가자 숨 쉴 틈도 없이 연거푸 파도가 들이쳤다.

10년 전과 닮은 전직 대통령 수사 #논두렁시계, 명품가방까지 흡사 #지켜보기 불편한 전현 권력 갈등 #노무현은 “나를 버리라” 외쳤지만 #이명박은 ‘보수 궤멸’ 방패 삼아 #보수 지지자는 무엇을 기대할까

대통령 기록물을 훔쳐갔다는 논란은 시작에 불과했다.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이 월급사장으로 있던 골프장을 뒤졌다.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이상호 우리들병원 원장, 김수경 수도약품 회장 부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심지어 단골 식당까지 세무조사했다.

검찰 수사가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 박연차 회장이 구속됐다. 특수활동비를 몰래 쌓아둔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이 뒤를 이었다. 부인 권양숙 여사는 정 전 비서관을 통해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조사받았다. 그 돈의 행방을 조사하기 위해 아들 건호씨가 귀국했다. 입국하고, 달리는 승용차까지 추적해 생중계됐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논두렁 시계’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검찰은 중계방송하듯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렸다. 검찰 관계자라는 이름의 속칭 ‘빨대’가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보탰다”며 분개했다. ‘노 전 대통령 회갑 때 박연차 회장이 준 것을 감추려고 논두렁에 내다 버렸다’며 망신을 줬다.

10년 만에 너무나 닮은 풍경을 다시 보고 있다. 국세청 세무조사-과거 권력자 주변 인물에 대한 검찰의 먼지떨이 수사-특활비 유용…. 목표는 한 사람. 망신주기 폭로 ‘명품 가방’.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전 대통령의 부인이 미국 국빈 방문 때 국정원 특활비 3000만~4000만원으로 명품 가방을 샀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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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광경을 지켜보기가 답답하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처벌하는 게 당연하다. 전직 대통령이라고 일반 서민과 다를 수 없다. 정권 교체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불편한 이유가 뭘까. 아직도 우리 정치가 이 수준이라는 자괴감이다.

적폐청산인가 표적 수사인가. 국민이 바라는 건 좀 더 잘사는 나라다. 전직 대통령이라고 범죄를 덮어줄 수는 없다. 그렇지만 복수혈전은 다른 문제다. 표적 수사는 일반인에게도 해서는 안 된다. 망신 주기 폭로는 치졸하다. 당장은 권력의 일방적 게임이다. 하지만 보복은 보복을 낳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7일 “보수 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곤경에 처한 그에게는 가혹할지 몰라도 자업자득이다. 악순환의 첫 단추를 그 스스로 꿰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분노’한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불편한 또 다른 이유는 수사기관이다. ‘권력의 개’라는 오명을 벗었을까. 개혁이라니, 무엇이 달라졌나. 그때도 그랬고, 이제도 다르지 않다. 제도 개혁은 중요하다. 하지만 ‘사냥개’로 부리지 않겠다는 권력자의 의지가 없으면 말짱 헛일이다.

두 대통령이 다른 점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비장했다. 정상문 비서관이 구속되자 “저희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죄를 떠안았다. 자신의 실패가 진보의 실패로 되는 것을 걱정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고 외쳤다.

이 전 대통령도 “저의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포괄적 감독 책임뿐이다. ‘정치보복’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보수 궤멸’을 들먹이며 보수 세력을 붙들었다.

측근들이 나서 맞불 폭로를 들먹였다. 곤궁한 처지라는 건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종주먹을 들이대 어쩌자는 건가. 전직 대통령의 품격에 맞지 않고, 명분도 없다. 대통령이 가진 정보를 자신의 안위와 바꾸려는 것으로 비칠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자신을 버려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보다 진보세력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모든 것을 버렸다. 버림으로써 얻었다. 보수 정권 9년 동안에도 봉하마을에는 추모객이 줄을 이었다. 이제 정권까지 얻었다.

보수는 어떤가. 지난 10년 진정한 보수 정권이었나. 보수의 미래는 있는가. 두 전직 대통령이 칼끝에 서 있다. 궁지에 몰린 그들에게 무엇을 더 바랄까마는 보수의 미래를 더 걱정하는 메시지는 보지 못했다. 지지자들은 무엇을 기대할까. 사실을 솔직히 밝히고, 지지자를 떠나 보내는 모습이 아닐까.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