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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즈의 소년 “신부님 뜻 기려 의사 됐어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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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15일 인제대 캠퍼스에 세워진 고 이태석 신부 동상에 졸업 학사모를 헌정하는 토머스. [연합뉴스]

15일 인제대 캠퍼스에 세워진 고 이태석 신부 동상에 졸업 학사모를 헌정하는 토머스. [연합뉴스]

‘남수단의 슈바이처’ 고 이태석 신부가 생전 아꼈던 아프리카 남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 소년이 한국에서 의사가 된다.

인제대 의대 졸업한 토머스 타반아콧 #고 이태석 신부 주선으로 한국 유학 #외과 전문의 돼 남수단 돌아갈 것

지난 15일 부산 인제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토머스 타반아콧(33)의 얘기다. 토머스는 이날 치러진 인제대 의대 제34회 학위수여식에서 동료 학생 107명과 함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낭독했다. 인제대 의대는 이 신부가 졸업한 모교다.

10대 시절 토머스는 고 이태석 신부가 미사를 집전할 때 곁에서 돕는 복사단원(천주교에서 사제의 미사 집전을 돕는 평신도)이었다. 생전 이태석 신부는 “신부님처럼 의사가 돼 아픈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어린 토머스의 꿈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이 신부는 수단어린이장학회를 꾸리고 후원자들에게 편지를 직접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토머스는 “우리가 공부해서 신부님의 뒤를 잇기를 간절히 바라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토머스와 2명의 친구는 2009년 12월 한국 유학길에 올랐다.

의사가 되기까지의 길은 험난했다. 1년 반 동안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한 뒤 2012년 인제대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의대에서 쓰는 한국어는 다른 나라 말 같았다”며 “무릎을 ‘슬관절’이라고 하는 식으로 한자어가 많이 들어간 의학 용어를 익히느라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지금의 그는 기자와 막힘 없이 전화 인터뷰를 할 정도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생전의 이 신부와 톤즈의 아이들. 원 안이 토머스.

생전의 이 신부와 톤즈의 아이들. 원 안이 토머스.

토머스는 “의대 교수님들이 방학이 되면 특별 보충 수업을 열어 지난 학기 수업을 복습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며 감사함을 표현했다.

그는 한국에 와서 의학 공부를 하며 고 이태석 신부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게 됐다고 한다. “한국에서 의사가 됐다면 훨씬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겠죠. 그런 삶을 포기하고 신부님이 되어서 머나먼 톤즈에서 사람들을 돕는 건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길이 아니란 걸 느꼈습니다. ‘하느님이 다 돌보지 못하는 곳을 대신 돌보라고 보낸 천사였구나’ 생각합니다.”

그는 “8주기인 지난 14일 신부님을 모신 담양 천주교공원묘원을 찾아 신부님께 제가 드디어 의대를 졸업한다고 말씀드리고 왔다”고 말했다.

얼마 전 의사 국가고시를 치른 그는 “합격하면 부산백병원에서 인턴으로 수련하고, 외과 전문의가 되어 남수단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는 “아직도 간단한 치료조차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신부님의 뒤를 이어 병들고 아픈 이들을 돌보고, 희망을 주는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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