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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때리기’가 영감의 원천이라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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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호 32면

매년 열리는 이색 행사 중 하나가 ‘멍 때리기 대회’다. 아무런 생각 없이 있는 상태로 누가누가 오래 버티나를 겨룬다. 대체 저런 걸 왜 벌이고, 누가 참가할까 싶었는데 꽤 심오한 의미가 있었다. 요즘 세상이 부르짖는 ‘창의성’ ‘아이디어’의 원천이 바로 이 멍때리기라니.

『 발상』 #저자: 이리스 되링 #베티나 미텔슈트라스 #역자: 김현정 #출판사: 을유문화사 #가격: 1만4000원

각각 광고 디자이너와 학술 저널리스트로 일하는 두 저자는 창작자들이 흔히 말하는 ‘영감’이 어떻게 얻어지는가를 파고든다. 무작정  ‘열린 마음을 가져라, 다양한 경험을 해라’라는 식의 가르침이 아니다. 이 책의 미덕이 여기에 있다. 구체적 방법과 사례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정말 궁금한 것, 그러니까 어떤 순간에 어떻게 그들의 머리에서만 ‘번개’가 치는지 말해 준다.

답을 얻기 위해선 우선 우리의 뇌를 파악해야 한다. 뇌는 익숙한 것에 길들여 있다. ‘필터링’에 강하다. 그래서 수많은 자극을 접하더라도 이미 알고 있는 것, 한 번 봤던 것에 더 끌리고 그것을 기억한다. 돼지감자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마트에서 왕창 세일을 해도 장바구니에 담을 가능성이 낮다.

경험이 미천하니 그만큼 눈에 들어오지 않고,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새로운 인식을 낳지 못한다는 변명은 하지 말자. 이 굴레를 벗어나는 건 새로운 자극에 집중하는 노력과 의지의 문제니까 말이다. 제아무리 음악 소리가 쿵쾅대는 파티에 있더라도 저 한 켠에서 누가 내 이름을 거론하면 청력이 소머즈처럼 극대화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지 않나.

관찰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방법이 있다. 놀이터·슈퍼마켓·카페에 가서 20장 작은 메모지에 보고 들리는 디테일들을 적어보는 거다. 그곳에서 느끼는 빛과 색깔, 가장 눈에 띄는 것, 가장 전형적인 부분 등등이 해당된다. 모두 채우고 나면 이곳이 얼마나 새로운지를 새삼 발견할 터다. 그리고 자신이 팩트에 충실한 관찰자인지, 감정에 비중을 두는 관찰자인지를 확인하면서 스스로를 객관화 해볼 수 있다.

발상은 아무 맥락없이 찾아오지 않는다. 우연한 행운이 아니라는 거다. 무언가 끊임없이 스쳐지나가는 기억들을 붙잡으며 현재 당면한 문제들과 연관시키는 뇌의 활동에서 나타난다. 예컨대 새로운 직업 혹은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만나는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영감의 단초가 된다. “결혼 준비가 너무 괴로웠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자신의 경력과 연관시켜 웨딩 서비스업을 해보겠다는 마음 먹는 식이다.

물론 관찰력·기억력 높이기만 부여잡고 살 필요는 없다. 다행히 우리의 뇌 역시 쉬어야 더 효율적일 때가 있단다. 머리 대신 몸을 쓰는 거다.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와인을 마시다 중간중간 사라지곤 했다. 피아노 앞에 앉지 않을 때 구상이 떠오르고, 이를 바로 악보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처럼 집안일을 하거나 산책을 하며 뇌의 ‘공회전’ 상태로 영감을 얻곤 했다. 이마저도 귀찮을 땐 잠이라도 맘 편히 자는 거다. 뇌는 심지어 수면 상태에서도 사고의 단편들과 장기 기억을 연관시키며 부지런히 문제의 해결능력을 높여주는 기특한 일을 한다니 말이다.

책을 통해 이론을 알았다면 이제 실천은 당신의 몫이다. 나는 언제, 어떤 식으로 아이디어를 얻는 게 효율적인가를 결정하면 된다. 물건의 조합에 몰입한다거나, 냄새에 민감해진다거나, 혹은 가만히 앉아 멍 때리는 일조차 자신만의 뇌 사용법이라면 상관없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유레카”를 외칠 기회가 열려 있으니까.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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