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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충격 … 은행원·공무원 일자리 10년 못 갈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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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호 08면

세계 첫 암호화폐 강의 연 데이비드 여맥 뉴욕대 교수

데이비드 여맥 뉴욕대(NYU)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2014년 세계 주요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강의를 개설했다. 사진은 네덜란드 에라스뮈스대에서 특강을 하는 모습. [사진 에라스뮈스대]

데이비드 여맥 뉴욕대(NYU)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2014년 세계 주요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강의를 개설했다. 사진은 네덜란드 에라스뮈스대에서 특강을 하는 모습. [사진 에라스뮈스대]

국내에서 암호화폐는 가격 오르내림과 거래 규제 여부가 논란의 초점이다. 투기 과열을 경계하는 정부와 정치권, 거래 제한에 반대하는 투자자 사이에서 논쟁의 목소리가 높다. 암호화폐 최대 시장인 미국은 조금 다르다. 정부와 투자자의 대립보다는 기업과 학계의 움직임이 더 눈에 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제이미 다이먼 JP 모건 회장 등 기업·금융인들이 암호화폐를 주시하고 있다. 대학을 중심으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강의가 활발하다.

출입국관리·금융·물류·헬스케어 … #시장의 가장 큰 고객은 정부 #데이터 관리 업무 없어질 것 #기술과 암호화폐는 완전 다른 주제 #비트코인 왜 오르는지 아무도 몰라 #클라우드에 저장된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해도 막을 수 없다 #싱가포르·UAE는 정부가 실험 지원 #미국은 개인투자에 정부개입 안 해

그 선두에는 데이비드 여맥 뉴욕대(NYU) 스턴경영대학원 교수가 있다. 2014년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강의를 MBA와 로스쿨 공동 과정으로 개설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세계 주요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개설된 정규 강의다. 이후 스탠퍼드·UC버클리·매사추세츠공대(MIT) 등도 관련 강의를 시작했다. 암호화폐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여맥 교수도 바빠졌다. 네덜란드·스위스·스웨덴 대학에서도 가르친다. NYU 금융대학 학장도 맡고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를 지난 16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50분간의 통화에서 그는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 투자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왜 분리하나.
“둘은 완전히 다른 주제라고 생각한다. 블록체인 기술은 기록 관리에 관한 것이다. 거래 내역을 적은 원장(元帳·ledger)을 참가자들이 나눠갖고 실시간으로 바뀐 내용을 업데이트한다. 암호화폐의 근간이 되는 기술로, 결제 이상의 기능을 적용할 가능성도 있다. 암호화폐는 가격 등락이 심하지만, 블록체인 기술 자체는 영구적이다.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의 가치는 어떠한 상관관계도 없다.”
블록체인이 대중화되면 암호화폐의 가치가 높아지는것 아닌가.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의 가치는 연결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블록체인 기술이 널리 쓰이게 되면 비트코인 가치가 올라간다고 오해하는 것 같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반드시 비트코인을 소유할 필요는 없다. 오픈 소스이기 때문에 공개된 코드를 내려받아 누구나 쓸 수 있다. 이더리움 같은 일부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기반의 스마트 계약을 수행하도록 고안됐지만, 일반적으로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 가치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
 그러면 비트코인 가격은 왜 오르나.
“좋은 질문이다. 그건 아무도 모른다. 여러 전문가를 초청해 수업 시간에 특강을 하는데, 누구도 이 질문에 좋은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공급은 제한됐는데 수요가 증가해서 가격이 오르는데, 그 수요를 끌어올리는 원천(source)이 무엇인지 누구도 확실히 모른다.”
 그래서 거품이라고 하는 것인가.
“거품이라고 단정하기엔 조심스럽다. 거품은 꺼지고 나면 그게 거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현재진행형일 때 어떤 상품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확 떨어져야 한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비트코인 가격은 오르락내리락하다가 결국 안정될 것으로 생각한다.”
내재 가치가 없기 때문에 거품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금에는 어떤 내재 가치가 있는가. 미국 달러는 또 어떤가. 그 자체는 그냥 초록색 종이일 뿐이다. 암호화폐도 마찬가지다.”
암호화폐는 자산인가, 통화인가.
“통화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고 가치 변화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통화는 안정적으로 일정한 가치를 담아야 한다. 전통적 돈이라기보다는 투기적 투자의 대상으로 보인다.”
블록체인 기술은 미래를 어떻게 바꿀까.
“블록체인은 기본적으로 회계 시스템이다. 지난 600년간 회계학의 근간이 된 복식부기(複式簿記)의 실질적인 개선이다. 그래서 금융 산업이 전환점을 맞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금융 데이터를 기록하는 더 나은 방식이지만, 물류·헬스케어·금융·정부기록 등 보안이 필요한 모든 데이터의 추적 및 관리에도 적용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가장 큰 고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왜 그런가.
“출입국 관리부터 식품 안전까지 정부 업무의 상당 부분은 데이터 관리다. 정부가 서비스를 개선하고 공공 데이터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장기적으로 블록체인은 공무원 일자리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공무원 업무의 상당 부분은 데이터를 기록·관리·추적하는 일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5~10년 뒤 이런 일자리 상당 부분을 쓸모없게 만들 것이다.”
금융업의 미래는.
“금융 부문은 그동안 너무 정체됐다. 동료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컴퓨터와 통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금융업의 생산성은 1880년과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결제 시스템은 큰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앞으로 결제는 은행이 아니라 애플·아마존·구글 같은 정보처리 기업이 하게 될 것이다. 10년 뒤 은행이 존재할지도 불분명하다.”
10년, 너무 빠르지 않나.
“나뿐만 아니라 여러 전문가가 이같이 예측한다. 컨설팅회사 맥킨지는 10년 안에 세계에 은행이 2곳만 남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알다시피 맥킨지는 급진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 블록체인 같은 혁신 기술은 은행이 도대체 왜 필요하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물론 네트워크 병목현상, 용량 제한 문제는 블록체인이 풀어야 할 과제다. 안전하지만 확장성은 아직 부족하다.”
한국에선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논의가 한창이다.
“한국 상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다만 거래소를 폐쇄하더라도 거래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암호화폐는 클라우드에 저장돼 있다. 가까운 홍콩으로 날아가 비트코인 밋업(모임)에 가면 비트코인을 거래할 수 있다. 지난해 중국이 거래소를 폐쇄했을 때 풍선효과로 일본과 한국 내 거래가 확 늘었다. 중국인들이 와서 거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장기적으로는 중국도 암호화폐 거래를 용인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미국은 왜 암호화폐를 규제하지 않나.
“정부가 단지 가격을 통제할 목적으로 개입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암호화폐뿐 아니라 주식·부동산 등 어떤 자산도 마찬가지다. 개별 투자자가 자기 책임으로 결정할 일이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일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소비자 보호라는 관점도 있다. 하지만 개입할 경우 그 방향이 옳을 확률은 50%라고 본다.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믿는다.”
한국에선 투기 과열이 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다.
“암호화폐는 작은 시장이다.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모든 암호화폐 합산 시가총액이 약 8000억 달러(약 850조원)다. 대부분은 한국에 있지 않다. 부동산·주식·채권 등 다른 자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다. 거시경제 안정에 영향을 줄 정도로 투자 규모가 커질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암호화폐 투기 논란과 별도로 한국이 블록체인 기술을 키우기 위한 조언은.
“싱가포르나 아랍에미리트(UAE)가 좋은 예다. UAE는 5년 내 모든 공공 기록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싱가포르는 샌드박스 규제를 하고 있다. 기업들이 규제와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실험할 수 있도록 일시적으로 규제를 풀어준다. 미국 정부는 블록체인 기술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규 개정을 유도하고 있다. 블록체인에 저장된 주식도 전통적 주식과 똑같은 대우를 받도록 규정을 바꾸는 식이다.”
2014년 강의를 개설하게 된 계기는.
“2013년부터 신문에 비트코인 기사가 자주 나왔다. 연방준비제도(Fed)와 재무부 등 규제 당국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뉴욕의 금융인 모임에 갔더니 블록체인으로 생겨날 새로운 비즈니스와 법적 문제에 대한 대화가 활발했다. 혁신이 일어날 때 시장이 필요로 하는 학생을 교육하는 게 대학이 할 일이다.”
강의가 올해로 4년째인데.
“처음에는 강의명에 비트코인이 들어갔다. 당시 거의 유일한 암호화폐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암호화폐가 수천 개 생겨나면서 더는 비트코인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금융·경제·기술·법 등을 포괄한다. 첫해에 학생이 35명이었는데, 이달 말 시작하는 강의에는 175명이 신청했다. 기술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 학기마다 강의 내용이 진화한다. 지난해 1월 강의를 시작할 때는 가상화폐공개(ICO)가 존재하지 않았는데 4월 학기가 끝날 때쯤엔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올라 서둘러 내용을 추가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너무 위험해서 암호화폐엔 투자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여맥 교수는 이 분야의 전문가로 손꼽히지만 직접 암호화폐에 투자하지는 않는다. 그는 “시장 변동성이 투자 위험의 일반적인 기준을 넘어설 만큼 크다”며 “이렇게 위험한 데는 절대 투자하지 않는 것이 내 원칙”이라고 말했다. 대신 연봉의 일정 부분을 주식 펀드에 투자한다. 그는 웃으며 “금융학 교수로서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것은 비이성적”이라고 덧붙였다.

수강하는 학생들에게도 투자에 대한 조언은 하지 않는다. 그는 “암호화폐에 대한 정보는 많이 공유하지만, 막상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위험에 대해 너무 많이 얘기하기 때문에 투자할 마음이 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자녀 4명 가운데 2명은 암호화폐에 투자한다. 18세 아들은 암호화폐 라이트코인을 샀고, 13세 딸은 채굴팀의 일원으로 비트코인을 캐고 있다고 한다. 그는 “투자금액이 매우 적은 데다  블록체인 기술과 함께 평생 살아갈 텐데 어릴 때부터 배우면 혜택이 있을 것 같아 굳이 말리지 않는다”며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고 배우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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