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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예술단 판문점 통과 요청 … “분단 상징서 평화공세 포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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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이 평창 겨울올림픽에 ‘삼지연관현악단’을 파 견키로 함에 따라 이 악단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2015년 2월 19일 설을 맞아 평양 인민문화궁전 에서 공연하는 삼지연악단. [연합뉴스]

북한이 평창 겨울올림픽에 ‘삼지연관현악단’을 파 견키로 함에 따라 이 악단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2015년 2월 19일 설을 맞아 평양 인민문화궁전 에서 공연하는 삼지연악단. [연합뉴스]

북한이 평창 겨울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하기 위한 회담에서 예상을 깨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군 앞에서 민족 공조 강조해 #한·미 동맹 견제하려는 것” 분석도 #삼지연관현악단은 한시적 단체설 #갈등 막으려 무난한 이름 붙인 듯

당초 15일 회담에 북한 체제 찬양을 주로 공연하는 모란봉악단의 현송월 단장이 대표로 나온 것을 두고 ‘남측이 공연 내용을 제한할 경우 올림픽에 가지 않을 수 있다’는 전략을 숨긴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회담에서 민요와 세계적인 명곡을 연주하겠다고 했고, 대표단의 이동 수단도 정부의 독자 대북제재에 묶여 있는 하늘길이나 바닷길 대신 판문점을 이용한 육로로 이동하겠다고 밝혔다. 김진무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는 16일 “일단 남남갈등을 일으킬 소지를 없애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북한의 모습 이면에는 복선이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왜 판문점인가=북한은 15일 실무협의에서 예술단의 이동 경로를 판문점으로 하겠다고 통보했다. 1953년 휴전 이후 판문점은 남북이 왕래하는 유일한 공식 통로였다. 84년 북한의 수해 지원 때나 98년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 떼 방북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위해 서해·동해선 도로와 철도가 개통된 이후 판문점은 회담이나 시신 송환 등에 활용하는 게 전부였다. 북한이 잘 닦인 휴전선~개성공단 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불편한 판문점 도로를 이용한 까닭은 뭘까.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탈북자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평화의 상징인 올림픽에 참가한다는 모습을 보이는 평화 공세”라고 말했다. 전현준 우석대 겸임교수도 “북한 대표단의 방한은 국제적으로 조명을 받을 것”이라며 “자신들이 핵과 미사일을 가지고 있지만 평화를 추구하고, 내부적으로 김정은이 통일에 대한 유훈을 관철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판문점 남측 지역을 유엔군(미군) 점령 지역이라며 적대시해 왔다”며 “하지만 이번에 판문점 통과를 계기로 평화 메시지를 보내면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미군이 보는 앞에서 민족 공조를 강조하며 한·미 동맹을 견제하려는 것이란 분석도 있다.

공연 장소로 유력한 강릉아트센터의 내부. [연합뉴스]

공연 장소로 유력한 강릉아트센터의 내부. [연합뉴스]

◆왜 삼지연관현악단인가=북한은 방한 예술단의 명칭을 삼지연관현악단이라고 밝혔다. 2000년 후반부터 활발하게 활동하는 삼지연악단은 있지만 삼지연관현악단은 남측에 알려지지 않은 단체다. 북한은 과거 한국에 예술단을 파견할 때 각종 단체에서 사람들을 모아 ‘평양예술단’식으로 한시적 단체를 만들었다. 그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예술단 명칭에 삼지연을 붙인 까닭은 뭘까. 삼지연은 백두산 아래에 큰 호수가 세 개 있다고 해서 붙여인 지명이다. 북한에선 김일성 주석이 항일혁명투쟁을 했다며 ‘민족의 성산’이라고 여기는 백두산과 같은 의미로 통하기도 한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백두혈통’이라는 정통성 확보 차원에서 최근 이곳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북한은 이동 경로를 판문점으로 택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비교적 무난한 이름으로 남측의 갈등을 사전에 차단해 자신들의 실리를 찾으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삼지연 근처에 스키장이 있어 겨울올림픽과 연관한 이름을 붙였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김진무 교수는 “북측은 다양한 의도로 남북관계에 나선다”며 “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면 그에 대한 대응도 훨씬 합리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용수·전수진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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