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실용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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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주 국립일만대학 정치학과 교수들과 일만·중공관계와 남북한관계에 대해 토론할 기회를 가졌다. 이 토론에서 일·중관계와 남북한관계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되었고 필자는 일·중관계와 남북한관계가 왜 이러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가에 대해 중앙일보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만은 중공에 대해 「스리노」(three no)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스리노」원칙이란 노콘택트(no contact), 노니고시에이션(no negotiation) 노컴프러마이즈(no compromise)를 가리키는 것으로 중공과는 접촉하지 않고, 협상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에 따라 대만은 중공과 어떠한 공식적 접촉이나 협상·타협을 시도해본 일이 없다.
이에 반해 우리는 l6년전에 이미 7· 4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자주통일·평화통일사상과 이념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한 민족적 대단결의 원칙을 천명하였고 이러한 원칙에 따라 북한측과 공식적인 접촉과 협상을 간헐적이나마 지속해왔다. KAL 858기 폭파사건으로 남북관계는 극도로 냉각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정부는 북한과의 협상원칙을 포기하고 있지는 않다.
대만학자들은 이와 같은 우리의 협상원칙을 높게 평가하고 대만 정부도 「스리노」원칙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7O년대초이래 시작된 남북간의 대화가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가에 대해서 필자는 실로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1985년 추석때 소수의 고향방문단과 예술인단을 상호교환한 것 외에는 별 성과를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북간의 협상원칙에도 불구하고 남북간의 실질관계에는 거의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만 정부는 중공에 대해 「스리노」원칙을 아직도 견지하고 있지만 대만·중공과의 실질관계는 남북간의 그것보다 훨씬 좋았다. 대만은 홍콩을 통해 중공과 간접무역관계를 수립하고 있고 작년 한햇동안의 양국간의 무역량은 16억달러에 달했다. 작년의 경우 그 전년도에 비해 대만의 대중공 수출량은 55%· 증가했고 수입량은 1백10% 증가했다고 한다. 대만과 중공간의 실질관계는 경제분야에 국한되지 않았다.
올 2월까지 9만7천5백⒁명의 대만사람들이 중공의 진척을 방문하겠다는 신청서를 정부에 냈고 그중 1만5천3백53명이 이미 중공을 방문하고 돌아봤다.
대만학자들의 말로는 미·중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한 1970년대초부터 대만사람들이 정부의 허가를 받지않고 비밀리에 중공의 친척을 방문했고, 대만정부는 이를 알면서도 법적으로 문제삼지않고 묵인하였다고 한다. 대만은 중공과 문화적 교류관계를 맺고 있지 않지만 작년9월부터 공산주의를 찬양하지 않는 중공의 출판물은 수입을 허가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이제는 대북시의 서점에서는 어디서나 중공 출판물이나 그 복사본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되었다.
대만과 중공간의 경제적·인적·문화적 관계는 앞으로 보다 진전될 전망이다. 대만학자들은 한국기업인들의 중공진출소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고 대만이 하루바삐 중공과 직접적인 경제관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태까지 중공방문은 비국민당원과 비관료에게만 허용되었지만 대만정부는 지난달부터는 국민당원들과 과장급이하의 정부관료들에게도 중공의 친척방문을 허가하고 있다. 또한 대만정부는 국제학술회의와 스포츠행사에 있어서 중공과의 공동참여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대만정부는 중공사람들의 대만친척방문은 아직 허용하고 있지 않다. 너무 많은 중공인들대만을 방문하고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만에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대만학자들은 이러한 판단에도 의문을 제기하였고 멀지않아 중공인들의 대만방문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대·중관계와 남북한 관계의 이와 같은 차이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겠다. 무엇보다도 중공이 개방화·자유화정책을 채택하고 대만과의 실질관계수립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반해 북한은 아직도 페쇄적인 정책으로 한국과의 실질관계수립을 기피하고 있다는데서 그 차이의 한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또 대만이 한국보다도 빠른 경제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만에서는 부가 소수의 재벌그룹에 편재되지 않고 상당히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다는 데서도 그 차이의 다른 원인을 볼수 있다. 또 대만과 중공을 둘러싼 국제정세의 변화와 대만기업인들의 중공진출가능성 모색도 대만과 중공간의 이와 같은 실질관계 수립에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요인에 앞서 필자는 중관계에서 중국인들 고유의 실용주의가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화와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관계를 맺어가는 중국사람들과 대화와 협상의 명분론을 수없이 반복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관계를 개선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는 남북한 당국자들간에는 기질적 차이가 있지 않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서는 내용없는 형식주의에 흐르기 쉬운 명분론에 집착하기보다는 중국인들의 실용주의에서 뭔가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복<서울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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