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응답이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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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호 31면

성석제 소설

천일기도가 다 끝나간다. 나는 3년 전 내가 사는 읍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2월에 졸업하게 되어 있으나 아직은 학생이다. 천일기도, 학생을 연결시키면 학부형이 자기 자식 좋은 대학 가게 해달라고 사찰이나 교회 같은 데 가서 천 일 동안 올리는 기도를 생각하기 쉬운데 천일기도를 한, 완주해낸 당사자는 나다. 자랑스럽게도.

고교 3년 동안 ‘천일기도’ 수험생활 #5% 우등생 들러리 선 공부가 전부 #세상도 다수가 소수 떠받치는 것? #아직 어떤 신도 응답해주지 않아

천일기도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그분은 내가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내가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 안 있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등학생 3년이면 1095일이다. 그중 방학 빼고 공휴일 빼고 하면 대략 천 일을 학교에 나와야 졸업을 할 것이다. 천 일 동안 학교는 꼬박꼬박 다니지만,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게 일이고 머리 만지고 화장하고 만화보고, 하여튼 공부하고는 담쌓고 사는 아이들을 천일기도 하러 학교 다닌다고 한다. 그 반대의 경우, 즉 학생답게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아이도 있긴 하지만 아주 드물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여러분 장래가 달렸다.”

나는 절대다수가 속해 있는 천일기도의 대열에 들어갔다. 내 능력, 부모님의 능력, 우리 학교나 동네의 수준, 현실과 바람의 불일치를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일찍부터 자율적으로 기도를 시작해 오전 내내 기도를 계속하고 나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다시 기도에 들어가 학교가 끝나기까지 내내 기도에 몰두한다. 하교하면서부터 내 생활로 돌아와 아이들과 수다 떨고 놀고 음악도 듣고 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한밤중에는 동영상 보고 게임을 하느라 잠 잘 시간을 줄여야 하므로 다음 날 아침에는 자연스럽게 기도를 할 준비가 갖춰진다.

천일기도를 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학교에 와서는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하고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서 공부하고 집에 가서는 밤잠을 줄여서 공부하는 아이들, 상위 5~10퍼센트쯤 되는 아이들이다. 우리 반에도 두서너 명이 있다.

학교 수업은 철저하게 그 두어 명을 위주로 진행된다. 그들의 성적이 어떻게 나오느냐, 어떤 대학에 가느냐가 학교, 교사, 교장 선생님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들은 고향을 벗어나 서울 같은 대도시, 제가 원하는 대학에 갈 가능성이 확실히 높고 교문 위 현수막에 이름이 걸릴 것이다. 그 외 아이들은 천일기도를 하고는 있지만 원하는 대학에 가기는 불가능하고 원치 않는 대학에는 갈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안 가는 편이 가성비가 높다.

천일기도를 하지 않는 5~10퍼센트의 아이들, 줄여서 ‘5퍼’라고 하자. 그들과 나머지 아이들 사이에는 누구도 뛰어넘기 힘든 견고한 경계가 처져 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그 경계는 높아지면 높아졌지 낮아지는 법이 없다. 미꾸라지가 용 되는 것이 천일기도파가 5퍼가 될 확률보다 높을 것이다.

5퍼들은 학교를 대표해 나가는 각종 경시대회에도 나간다. 국·영·수 주요 과목과 논술, 백일장 등의 여러 분야에서 전국 단위로 치러지는 경시대회에 나가서 입상하면 학교에 대한 평가가 확 치솟기 때문에 해당 과목 담당 선생님들도 5퍼들을 신줏단지 모시듯 한다.

“자람아, 우람아, 소람아, 너희는 선생님과 우리 학교의 자랑이야. 실망시키지 않겠지?”

그런데 경시대회에는 전국에서 난다긴다하는 아이들이 다 나오니 우리 같은 시골 학교 5퍼 아이들이 입상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다음에 조금만 더 잘하자! 파이팅!” 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5퍼 아이들도 얼굴이 얼음덩어리가 된다. 안 됐다.

3학년에 올라와서 5퍼들은 한 학기 동안 고등학교 3년 전체 과정을 두 번 뗐다. 여름방학 동안 다시 한번 새로운 관점에서 교과과정 전체를 소화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기출문제를 풀면서 실전 감각을 익혔다. 5퍼들도 불쌍하다. 비슷한 지방의 고등학교에 있는 다른 5퍼들과, 서울 같은 대도시의 명문고 아이들과 미친 듯이 경쟁해야 하니까. 가산점이 있는 경시대회도 안 나갈 수 없고.

2학기가 되고 수능이 가까워지면 부모님들이 이것만 가지고 되겠느냐고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결국 학부형회를 통해 교장 선생님에게 압력이 들어가고 서울에서 족집게로 이름난 유명 강사를 초빙하게 된다. 유명 강사는 고교 3년 과정을 몇주 만에 압축해서 몰입 학습방식으로 확실히 끝내준다는 ‘파이널 핵심 정리 솔루션 코스’를 진행했다. 나도 천일기도를 잠시 중단하고 5퍼의 들러리를 서는 기분으로 그 수업에 들어갔다.

그 수업을 받은 아이들은 유명 강사라 확실히 다르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주야장천 5퍼만 붙들고 정성을 다해 가르친 선생님들이 낫다고도 한다. 문제는 돈이다. 짧은 기간 유명 강사에게 들이는 비용은 선생님들의 1년 연봉과 맞먹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돈이 어디서 나왔을까.

수업을 들은 5퍼의 학부형들도 조금은 냈겠지만, 대부분은 나머지 95퍼의 학부형이 낸 수업료에서 나왔을 것이다. 학교의 명예를 위해,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평가를 받기 위해 그동안 비축된 자금이 아낌없이 투여되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건 5퍼가 아니라도 간단하게 알 수 있다.

수능이 끝나고 난 뒤 아이들과 돈가스를 먹으러 갔을 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른 학교의 선생님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 강사한테 줄 그 돈을 우리한테 줬으면 훨씬 더 잘 가르쳐 줬을 텐데.”

“그래 가지고 잘 안 되면 우리가 그 욕을 어떻게 먹으라고? 그러니까 잘 되면 서울 강사 덕이고 못 되면 우리 탓이지.”
“맞아요, 늘 그랬어요.”

정말 내가 궁금한 것은 고등학생 시절의 천일기도가 끝난 이후에도 세상이 지금처럼 소수를 다수가 떠받치는 방식으로 굴러갈 것인가 하는 거다. 내 천일기도의 효험이 별로 없어서인지 아직 어떤 신도 응답해주지 않는다.

※‘성석제 소설’은 성석제씨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실험적 칼럼으로 4주마다 연재됩니다.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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