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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한글 안내판 내건 코리아존 … 영어 질문에 당황한 직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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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CES 준비 안 된 한국기업

10일 CES 2018 전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모인 ‘한국관’은 몇명만 방문해 한산한 모습이다. 대형TV에 소개된 한국 기업들의 부스 위치를 한국어로만 적어놓기도 했다. [하선영 기자]

10일 CES 2018 전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모인 ‘한국관’은 몇명만 방문해 한산한 모습이다. 대형TV에 소개된 한국 기업들의 부스 위치를 한국어로만 적어놓기도 했다. [하선영 기자]

#1. 10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CES(소비자가전전시회) 2018’에서 프랑스 스타트업이 몰려있는 전시 공간은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건 프랑스 스타트업 진흥 정책을 가리키는 ‘라 프렌치 테크’의 높이 솟은 간판들이다. 전도 유망한 스타트업들을 선정해 지원하는 ‘라 프렌치 테크’는 글로벌 스타트업 업계에서 하나의 고유 브랜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CES 간 한국기업 179곳 사상 최대 #중소기업 대부분 카탈로그만 전시 #자국 스타트업 한데 모은 프랑스존 #색색 간판 이스라엘존엔 인파 몰려 #정부가 기업에 홍보전략 전수해야

#2. 같은 시간 한국 중소기업들이 몰려있는 사우스 플라자는 한산했다. 개막 첫날인 9일과 비슷하게 부스 별로 2~3명이 찾는 수준이었다. 주로 해당 기업 관계자들만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영국에서 온 정보기술(IT) 애널리스트 벤저민 우드가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한 국내 중소기업 부스 앞에 섰다. “비슷한 제품이 이미 많은데 특징이 무엇이냐”는 우드의 질문을 받은 한 직원은 당황하면서 다른 직원을 찾았다.

전 세계 최대 IT 박람회로 불리는 CES에서 국내 스타트업·중소기업들의 참가 면면을 보면 아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올해 CES에 참가한 한국 기업은 총 179곳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삼성·LG와 같은 대기업 외에도 우수한 기술로 무장한 강소 기업들도 많다. 문제는 글로벌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없는 대다수 기업들이 ‘아마추어스러운’ 준비로 CES라는 금싸라기 땅에서 절호의 사업 기회를 놓친다는 점이다.

이런 중소기업들의 미숙한 점을 보충해줄 곳은 정부다. 타이완 정부가 차린 ‘타이완 테크’ 부스 앞에는 대형 디스플레이 네 개가 붙어있었다. 여러 기업의 상품을 한눈에 볼 수 있게 간결하게 소개하고 상품의 핵심 원리를 화면으로 보여준다. 우리 정부가 차린 부스 대부분이 칸막이만 세워둔 채 제품과 카탈로그만 올려둔 것과 대비된다. 심지어 개막 첫날인데 아직도 부스 설치를 끝내지 못한 한국 기업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프랑스 기업 부스와 이스라엘 기업 부스로 관람객들이 몰려들어 발디딜 틈이 없다. [하선영 기자]

프랑스 기업 부스와 이스라엘 기업 부스로 관람객들이 몰려들어 발디딜 틈이 없다. [하선영 기자]

알록달록한 간판으로 이목을 끈 이스라엘 기업들은 전시 공간을 아예 새로 지었다. 기업의 이미지와 홍보 영상을 띄우는 대형 TV도 기업마다 한 대씩은 있다. 대만·이스라엘 기업들의 부스에는 온종일 방문객들로 가득했다.

한국과 같은 비언어권 국가들은 언어 문제도 큰 장벽 중 하나다. 중국 선전에서 접을 수 있는 스쿠터를 만드는 ‘리링크’의 스테판 진 CEO는 본토 중국인임에도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기자에게 스쿠터 성능을 설명했다. 그는 “선전 지역의 여러 스타트업들과 함께 전시회 참가를 준비하고 정보를 공유한다”고 했다.

매년 반복되는 정부나 산하 기관들의 ‘따로국밥 부스’도 문제다. 이번 CES에서도 코트라(KOTRA)·한국정보통신기술산업협회(KICTA)·창업진흥원·대구 테크노파크가 따로 부스를 차렸다. ‘CES에 ○○개 기업들이 참가했다’는 숫자에만 자부심을 가지며 홍보에 열을 올리는 정부 기관들의 안이한 태도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축구장(7140㎡) 33개를 합친 것보다 넓은 28만㎡ 행사장에서 한국 중소기업들이 한 자리에서 ‘KOREA’라는 이름으로 모여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나마 미리 준비를 철저히 한 일부 국내 스타트업들의 선전이 눈에 띄었다. 가상현실(VR) 분야에서 ‘CES 최고 혁신상’을 받은 국내 룩시드랩스는 지난 3개월동안 이번 CES 참가를 준비했다. 이 회사는 뇌파와 눈동자의 움직임을 읽어 사람의 심리를 읽는 VR 기기로 CES 관람객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채용욱 룩시드랩스 대표는 “이미 오래 전에 제품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다”며 “손님들을 어떻게 응대해야하는 지를 놓고 시나리오를 짜서 직원들과 함께 수도 없이 리허설을 했다”고 설명했다. 채 대표는 “B2B(기업간거래)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행사장을 많이 돌아다니려고 했는데 많은 분들이 직접 부스를 찾아오셔서 굳이 움직일 필요가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선영 산업부 기자

하선영 산업부 기자

이번 CES를 참관한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정부가 글로벌 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 재정적인 지원만 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홍보와 비즈니스를 잘할 수 있는지 노하우와 경험을 전수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소기업·스타트업들도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이런 행사에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둘 게 아니라 보다 절실하게 세일즈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라스베이거스에서)

하선영 산업부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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