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설정 총무원장 "선거제도 바꾸지 못하면 한국불교 희망 없다"

중앙일보

입력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11일 오전 신년 기자간담회에 앞서 합장을 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11일 오전 신년 기자간담회에 앞서 합장을 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청사에서 11일 신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기며 기자들의 질문을 제한 없이 받던 설정 스님은 ‘조계종의 앞날’을 내놓았다. 설정 총무원장의 바로 뒤에는 ‘신심과 원력, 공심으로 존경받는 한국불교’라는 플래카드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새 집행부의 지향이기도 했다.

-그동안 한국 종교계의 적지 않은 성직자들이 존경을 받기는커녕, 손가락질을 받아온 게 현실이다. 조계종도 예외는 아니다. 떨어진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건가.

“총무원장 선거 과정에서 저에게도 여러 의혹이 쏟아졌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해소될 거라 본다. 불교는 수행집단이다. 저는 우리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근본적인 이유는 출가자가 여법(如法)하게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걸 회복하는 게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 본다.”

조계종은 종단의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며 '존경 받는 한국불교'를 지향점으로 내걸었다.

조계종은 종단의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며 '존경 받는 한국불교'를 지향점으로 내걸었다.

-총무원장 선거 때마다 종단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진다. 세속의 선거보다 잡음이 더 많다.

 “종단 안의 중진 스님들로부터 ‘선거제도를 개선하라’는 질책을 많이 받았다. 제가 만난 사회 각계의 저명인사들도 ‘조계종 선거제도가 불교를 망치는 근본’이라고 지적했다. 당선되기 위해 무분별한 중상과 모략을 넘어 금권이 동원되는 참담한 상황이 바로 조계종 선거제도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걸 바꾸지 못하면 한국불교에 희망이 없다. 그런 절박한 마음으로 제 임기 안에 반드시 선거제도를 개선하겠다.”

-설정 스님께서도 지난 총무원장 선거에서 기존의 종단 정치판에 일정 정도 빚을 지고 당선되지 않았나. 선거제도를 바꾸는 건 쉽지 않은 개혁이다. 기존 세력과 충돌이나 갈등도 예상된다. 어느 정도 의지를 갖고 있나.

“맞다. 빚을 졌다. 나는 빚을 제대로 갚으려고 한다. 총무원장 선거를 치를 때마다 조계종단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이제는 그걸 막아야 한다. 나는 그게 진정으로 빚을 갚는 것이라고 본다.”

설정 총무원장은 "선거 때마다 가라앉는 종단을 살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설정 총무원장은 "선거 때마다 가라앉는 종단을 살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총무원장 선거뿐만 아니라 교구본사 주지 선거 때도 ‘금권 선거’등의 잡음이 자주 불거졌다. 절집의 모든 선거제도를 개혁하겠다는 건가.

“그렇다. 모든 선거제도를 다 바꾸어야 한다. 그동안 선거를 치를 때마다 절집의 화합이 다 깨졌다. 저는 수덕사 방장을 맡으면서 주지 넷을 갈았다. 그래도 잡음이 없었다. 자기 사람을 세우지 않으면 된다. 제가 방장이라고 방장의 상좌(제자)를 주지에 앉히며 권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대중의 뜻이 모여진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동안 선거로 주지를 뽑을 때마다 시비가 생기고, 관청에 불려다닐 일이 생겼다. 선거제도는 보이지 않는 불교의 폐해다.”

이어서 설정 스님은 종단 운영 방향으로 ‘수행 중심 종단’에 방점을 찍었다. “승려는 어디에 있어도 승려여야 한다. 수행이 되지 않은 승려는 어느 곳에 있더라도 중생에게 이익을 줄 수 없다.” 조계종단에는 그동안 시대적 혹은 정치적 상황에 의해 멸빈 되거나 제적된 승려들도 있었다. 설정 총무원장은 그들을 모두 껴안고 가는 대탕평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모든 생명과 함께 가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대탕평을 위해서는 물론 종도들의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어렵지 않겠나. 그래서 이해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대탕평의 장을 부처님오신날(5월22일) 이전에 열려고 한다. 탕평은 서로가 이해하고 존경하는 바탕 위에서만 가능하다.”

설정 총무원장은 "갈수록 출가자가 급감한다. 그러나 우리만 잘 하면 이 문제는 저절로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설정 총무원장은 "갈수록 출가자가 급감한다. 그러나 우리만 잘 하면 이 문제는 저절로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갈수록 출가자가 급감하고 있다. 불교의 미래가 불안정하다. 대책이 있나.

“저출산 문제는 아이를 낳고 키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을 바꾸어야 아이를 낳게 된다. 출가자 급감도 마찬가지다. 절에 오면 먹고, 자고, 공부하고, 예술도 하고, 모든 걸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출가를 한다. 자연 환경도 절이 최고더라. 그래야 출가를 한다. 그래서 종단의 전면복지를 추진하려고 한다. 전세계가 탈종교화하는 시대이지만 우리만 잘하면 문제가 풀리리라 본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우상조 기자 vangogh@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