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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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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어젯밤 성공을 감안하면, 5분 후엔 미국 대통령도 될 수 있을 게다.”

프랑스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2004년 7월 버락 오바마에게 건넨 말이다. 일리노이 주상원의원이었던 오바마는 전날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을 통해 “백인의 미국도 흑인의 미국도 아닌 미합중국”을 외치며 스타가 됐다. 미국 민주주의의 요체를 살핀 알렉시 드 토크빌의 발자취를 173년 만에 되짚던 레비도 감동한 청중 중 한 명이었다. 레비는 이듬해 5월 잡지에 오바마를 ‘흑인 클린턴’이라고 썼다.

잉글랜드의 거친 변방 요크셔 출신의 16세 소년이 1977년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내가 어쩌면 보수당을 지지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수 있다. 지난 총선에서 첫 투표한 젊은이의 10%만 보수당에 표를 던졌으니까. 이런 추세대로라면 보수당의 집권이 불가능해지는 데 몇 년이 걸릴지 쉽게 계산할 수 있을 게다.” 윌리엄 헤이그는 종국엔 보수당의 지도자가 됐다.

명연설이 정치적 도약대란 건 우리도 다르지 않다. 참모로 여겨졌던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를 대통령 후보의 반열로 올려놓은 건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저는 매일 이 질문을 저 자신에게 던집니다”란 문구로 알려진 2015년 4월 국회 연설이었다.

오프라 윈프리도 최근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의 연설로 대선 출마 요구를 받고 있다. NBC가 한때 “우리의 미래 대통령을 위한 존경심”이란 트윗을 날린 일도 있다. 차별받고 불우했던 흑인 여성이 방송계 거물이 된 데 이어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까지 이른다면 ‘아메리칸 드림’의 궁극일 터다. 명성이 곧 능력인 시대인 데다 “할리우드가 헤겔을 압도하는”(레비) 미국 아닌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리얼리티쇼 스타였다. 윈프리 대통령, 불가능한 상상만은 아닐 게다.

그럼에도 불편함이 있는데, 대통령이 되는 능력과 대통령을 잘할 능력 사이의 간격을 알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은 본질적으론 “모든 인간사에 내재한 모호함과 모순을 헤쳐 나가면서 원칙들을 실행해 나가야 하는 임무”(헨리 키신저) 또는 “열정과 균형감각 둘 다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막스 베버)이다. 때론 부도덕한 선택을 하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공적 서비스 경험은 물론이다. 누구나 정치를 할 순 있지만 정치를 잘하기 위해선 자질도 훈련도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미디어 시대는 그러나 둘을 구분하지 못한다. 오히려 선거 능력이 강조된다. 우리 시대의 딜레마다.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