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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독도와 사법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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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러나 아쉽게도 그것만으로 일제의 완전한 청산은 되지 못했다. 당시 법전 편찬의 최대 관심사는 하루빨리 왜어(倭語)로 된 육법전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해방 직후의 혼란과 6.25의 전화(戰禍) 속에서 제대로 된 법전 편찬사업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에 당시 입법자들은 특정한 입법례를 대본으로 삼고, 여기에 약간의 첨삭을 가함으로써 단기간에 법률을 제정하는 방법을 택했다. 형법의 경우 일본개정형법가안을, 형사소송법의 경우 일제의 의용형사소송법을 대본으로 삼았다. 제대로 된 형사법령은 대한민국의 기틀이 잡힐 때까지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제 형법과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지 50여 년이 지났다. 그 사이 정치 분야의 민주화, 경제의 고도성장, 인권의식의 신장 등 여러 분야의 변화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국민소득 100달러를 달성할 것인지를 논의하던 시대에서 2만 달러를 추구하는 시대로 변모했다. 반세기 전의 입법자들이 생각했던 주권국가의 형사법령을 제대로 정비할 역량이 비축된 것이다.

그러나 형사사법에 관련된 법령 정비는 쉽지 않다. 법원.검찰.변호사 등 법조삼륜의 이해관계가 상충해 합의점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법조의 속성으로 인해 변화를 두려워한다. 이러한 보수성 때문에 역대 정권은 형사사법 개혁을 주된 의제로 삼았고, 지금의 참여정부도 형사사법 개혁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형사소송법을 위시한 일련의 개정법률안들이 국회에 제출돼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국회 법안 심의 과정을 바라보면서 한 가지 걱정이 앞선다. 1995년 형법 개정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정부는 8년간의 준비작업을 거쳐 92년 형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일본법의 틀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우리 형법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당시 국회는 아무런 역사의식이 없었다. 형법개정안은 수많은 법률안의 하나일 뿐이었고 심의는 지연됐다. 제14대 국회가 끝나갈 무렵 형법 개정은 벌금의 단위를 환에서 원으로 고치고 실무에 필요한 일부 조문을 보완하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이번의 개정법률안들은 절대로 95년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일본의 관련 학자들은 우리 형법과 형사소송법이 그네들의 입법례를 토대로 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한국의 형사법령을 자신들이 만들어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반세기 만에 준비된 형사법 개정법률안들은 우리의 역량이 집결된 것이다. 법원.검찰.변호사 등 법조삼륜이 참여해 모처럼 합의를 이뤄낸 성과다. 이제 국회는 이 개정법률안들에 대해 역사의식을 갖고 심의에 착수해야 한다. 무엇보다 신속한 심의와 의결을 통해 개정법률의 차질 없는 시행을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형사소송법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형사법령을 주권국가의 그것으로 우뚝 세우는 제17대 국회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신동운 서울대 교수·한국형사정책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