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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트럼프의 100% 화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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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트위터에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172%’라는 글이 떠돈다. 리얼미터가 8일 발표한 대통령 국정지지율 71.6%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100% 지지 발언을 합한 수치다. 트럼프는 지난 4일 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은 100% 문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문빠’로 불리는 대통령의 적극 지지자들은 이런 ‘다이아몬드 지지율’을 자랑스러워한다. 트럼프는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남북대화를 100% 지지한다”고 밝혔다.

사실 트럼프의 ‘100%’는 초등학생 수준의 쉬운 영어를 구사하는 그의 단골 화법이다. 단순한 말을 반복해 효과를 극대화한다. 지난해 2월 아베 신조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선 “위대한 동맹인 일본을 100%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트럼프의 100% 화법을 그의 마음을 사는 데 거꾸로 활용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총격 참사가 터지자 아베 총리는 트럼프에게 위로 전화를 걸어 “일본과 일본 국민은 미국과 미국 국민에 100%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아베는 역시 진정한 친구”라고 고마워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11월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첫 방문국인 일본의 아베 총리와의 통화에서도 “우리는 100% (일본과) 함께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트럼프의 100%가 말처럼 100% 확실한 건 아니다. 트럼프는 대선후보 시절인 2015년 유세 중에 “뉴저지에서 수천 명의 무슬림이 9·11 때 환호하는 것을 봤다”는 발언으로 도마에 올랐다. 언론의 팩트체크로 거짓임이 드러났지만 트럼프는 “자신의 발언이 100% 옳다”고 강변했다.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선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에 대해 “내가 한 모든 행위는 100% 정당하다”고 말했다.

4일 한·미 정상 간의 통화 이후 공개된 청와대와 백악관의 발표문이 달라 논란이 됐다. 양국의 상황 인식에 미묘한 온도 차가 느껴지지만 크게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정상 간의 대화를 서로의 입장에서 강조점을 달리해 해석하는 건 통상적인 외교 관행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트럼프의 100% 발언을 백악관이 굳이 발표문에 넣지 않은 건 그 말이 이미 상투어처럼 쓰이고 있어서가 아닐까. 트럼프는 당선인 시절인 2016년 11월 촛불에 둘러싸여 청와대에 유폐되다시피한 박근혜 대통령과도 통화했다. 한·미 동맹을 강조한 박 대통령의 발언에 트럼프는 “100% 당신과 함께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트럼프의 100%는 굳이 상대방을 가리지 않는, 그런 것이다.

서경호 논설위원